언론에도 ‘뉴스의 비수기’가 존재한다. 7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의 휴가철이다. 국회에서도 이 시기를 ‘정치방학’이라 한다.

그런 비수기에 언론으로선 호재가 터졌다. ‘이상호 X파일’과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이다. 과연 비수기답지 않게 서울지역 신문들(소위 ‘중앙지’)은 이와 관련된 기사들로 연일 지상을 도배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신문에겐 이 호재가 오히려 악재다. 알다시피 서울에서 전국적 관심을 집중시킬 큰 뉴스거리가 생기면 지역뉴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당장 지역신문의 인터넷 접속자 수부터 확연히 차이가 난다. 특히 지역밀착보도를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경남도민일보의 경우 적당히 서울지에 편승해 지면을 구성할 수도 없다보니 지면짜기가 더욱 어렵다.

졸지에 눈뜬 장님된 국민들

어쨌건 지역신문의 데스크로서도 4000만 대한민국 국민을 졸지에 ‘눈뜬 장님’으로 만들어버린,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귀가 있어도 듣지 말고, 눈이 있어도 보지 말 것’을 강요하고 있는 ‘이상호 X파일’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아침마다 이 신문 저 신문을 뒤적거리고, 그것도 미진해 인터넷 뉴스사이트를 뒤져보지만, 그럴 때마다 뭔가 알맹이가 빠져 있다는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요즘 들어선 검찰의 뒤꽁무니만 쫓는 기사 일색이다.

독립언론이건 족벌·재벌언론이건 간에 ‘정·경·언의 추악한 유착’에 관심을 두느냐, 아니면 ‘불법 도청’을 강조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기사의 초점이나 제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담고 있는 팩트나 기사의 꼭지는 거의 대동소이하다.

앞뒤 사정도 잘 모르는 변방의 한 신문쟁이가 뭘 안다고 훈수냐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번 X파일의 몸통을 ‘삼성제국(三星帝國)’이라 본다. 삼성이라는 제국이 중앙일보라는 식민언론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치를 농단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드러난 X파일의 내용에는 일부 검찰도 제국의 식민지배 아래에 있었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식민검찰과 식민언론은 물론, 당선이 유력했던 대통령 후보, 그리고 이미 대통령을 지낸 사람까지도 이 제국의 식민통치에서 자유롭지 않았음을 입증해줄 수 있는 게 바로 X파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언론이 식민지배 의혹의 한 축인 검찰의 뒤꽁무니만 쫓고 있어서야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파헤칠 수 없다.

뉴스의 요건에는 계기라는 게 있다. 뜬금없이 과거의 일을 보도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X파일은 그동안 삼성제국의 위세에 눌려 기사화하지 못했던 모든 사건을 재정리해볼 수 있는 충분한 계기가 되고도 남는다.

X파일 본질은 삼성제국

당장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 사건이 떠오른다. 그는 ‘노조설립을 시도한 삼성SDI 노동자들의 휴대전화를 누군가가 복제해 위치추적을 했다’는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오히려 위치추적을 당한 김성환 위원장은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죄로 실형 10개월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나는 월간 <말> 이외에 이 사건을 제대로 보도한 언론매체를 찾아보지 못했다. 월간 <말> 2005년 5월호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A4용지 약 1600여장에 이르는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기록을 입수해 분석을 해봤다. 수사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본지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서울지검의 결론과 다르게 범인을 추적할 수 있는 여러 단서들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그 단서들 앞에서 검찰수사가 맥없이 멈춰 버렸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말>지가 찾아낸 그 단서들 앞에 검찰수사만 ‘맥없이 멈춰’ 버린 게 아니라, 대한민국 언론의 취재도 ‘맥없이 멈춰’ 버렸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번 X파일을 계기로 멈춰버린 취재를 다시 시작하지 않는 언론은 <중앙일보>에 돌을 던질 자격이 없다고 본다. 앞으로 우리도 지역에서 그동안 놓쳐버린, 그리고 멈춰버린 삼성관련 취재는 없었는지 찾아 나서볼 참이다.

사족이지만 <말>지 기사에도 옥의 티가 있다. ‘삼성공화국’이란 표현이 그것이다. 공화국은 선거에 의해 국가원수를 뽑는 국가형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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