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 지음ㅣ도원미디어

인구에 회자되는 X파일은 썩은 권력의 일부를 드러낸 작은 칩에 불과하다. 또다른 새 칩을 끼워넣으면 X파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부활할 것이다.

썩은 재벌기업의 고질적 병폐를 칼로 도려내듯 해부할 잣대는 무엇일까.

   
대기업 삼성은 X파일로 인해 미림팀의 공운영 팀장이 배부위를 약간 자해했을 정도의 자극밖에 받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 유야무야 일이 마무리되면 여전히 삼성은 국내 1위의 기업이며 세계로 뻗는 초일류 회사로 남아있게 된다.

대한민국 중심에 서 있는 삼성과 이건희 회장, X파일 등장에도 꿋꿋이 몸을 곧추세우고 있는 삼성과 이건희 회장. 삼성이 우리에게, 우리나라에서 그야말로 올곧은 기업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있다. 그 해결책을 찾아보자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삼성에 대한 반감이나 적대감을 끼워넣어 독자들에게 삼성을 아주 되바라진 기업으로 상징화시키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다만, 삼성이 다시 한번 변해야 우리가 소망하는 미래지향적인 사회로 국내 전체의 흐름이 유도된다는 것이 지은이의 시각이요 바람이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북유럽 국가를 닮자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그 국가들을 닮자고 하면서 초고층 주상복합타워팰리스 같은 건물을 높이 세워 자신의 주장에 반하는 업적을 서슴지 않고 있다.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은 ‘삼리삼해(三利三害)', 즉 세가지 이익이 있으면 반드시 세가지 해가 있다는 말을 경영철학으로 삼았다. 1936년 북마산에서 3만원을 가지고 정현용, 박정원과 함께 협동정미소를 설립한 이후 삼성그룹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파란만장한 세월동안 협동정미소의 실패는 이병철 회장이 반면교사로 삼았던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 실패와 경영철학이 있었기에 오늘의 삼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건희 회장 체제의 삼성은 말과 행동이 다른 업적 쌓기에 연연해 시대에 거스르는 때가 종종 있어 안타깝다.

“삼성이여, 다시 한번 변할 때다”

   
“삼성의 위기는 곧 한국 경제의 위기라는 등식과 맞물려 시작된 삼성의 ‘경영개혁운동'은 사실 우리 사회 속에 팽배한 경제 불안심리와 절묘하게 맞물려 국민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국민적 공감은 삼성이 전 세계 곳곳의 시장을 누비는 일류기업으로 성장한 오늘에도 멈추지 않고 있다.”

지은이의 말처럼 삼성은, 아니 이건희 회장은 인류 사회에 공헌한다는 그 ‘공헌'을 믿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삼성이 주창하는 ‘공헌'의 의미는 소비자나 독자에겐 다른 시각으로 다가오며 때론 감지하기도 어렵다. 이건희 회장이 타워팰리스를 세울 때 “하와이는 참 공기가 좋습디다”라는 말 한마디에 하와이 공기를 타워팰리스 실내에 재현하는 데 성공할 정도의 삼성맨들, 그들이 변화하지 않기에 삼성은 아직도 이건희 체제로 건재할 수 있다.

골짜기를 따라 논밭 위로 살랑살랑 부는 타워팰리스 외부의 산들바람은 제쳐두고라도 진정 타워팰리스 안에서 하와이 바람을 느껴보는 게 우리 국민들의 정서인지 파악해 볼 일이다.

각종 가전제품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흘려보내는 주범이 삼성이지만 전자파를 막는 법을 제시하려는 적극성도 삼성에겐 미흡하다.

환경문제도 수박겉핥기식이다. 언론에서 이슈가 되고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 환경문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막연한 논리를 편다. 국내 1위 기업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말은 해줘야 한다는 배경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말 뿐 실천은 뒷전이다. 천성산의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지율스님이 단식을 했을 때 이건희 회장은 환경보다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은이는 단언한다.

이건희 회장이 생각한 여성인력 대책도 치졸하기 그지없다. 여성 인력을 적극 채용하라고 늘 말하지만 그 이면의 허상을 들추면 기가 막힌다. 삼성은 신규 채용시 여성인력을 30%선에서 뽑아 타 기업에 비해 모범적인 것으로 인정받았지만, 임금수준은 낮춰 허점투성이의 여성인력채용 선례를 남기는 오점을 남겼다.

또 삼성에는 노조가 없다. 노조가 생길 틈을 주지 않을만큼 삼성식구들에게 금전적으로 잘해준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건희 회장의 한마디는 군주시대 제왕의 말과 같다.

이를 두고 지은이는 ‘혹 삼성 식구들만 잘 먹고 잘 살자는 뜻이 숨어있는 건 아닌가. 인류의 행복을 위한 ‘공헌'을 삼성경영전략의 기치로 내건 이건희 회장의 말과도 배치되는 건 아닌가'라고 묻고 있다.

국내 일류 기업에 바라는 마음 ‘구포’ 라는 인물 통해 서술

이 책은 삼성과 이건희 회장을 많은 부분에서 다루고 있지만 문제는 ‘우리'라는 데 천착하고 있다. 남녀 평등 성취도가 높고, 교육환경이 좋아지고, 생태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삼성과 이건희 회장을 무대로 올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소 어눌한 구성으로 흡인력과 탄탄한 짜임은 부족하지만 부분 부분 공감대는 형성되는 책이다. 국내 일류기업에 바라는 마음을 이건희 회장을 짝사랑하는 ‘구포'라는 인물을 통해 서술하는 방식이 이채롭다. 258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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