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정책문제에서 엇길을 달리는 여야 정치권이 부동산에 한해서는 보조를 맞추고 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한배를 타는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위기의식이 짙게 배어난다. 오죽해서 야당의원 마저 1인1주택제라는 최강경처방을 들고 나왔겠는가.

공공임대주택을 늘려야

그럴 정도로 부동산 문제는 정권적 차원을 넘어서서 국가적 과제로 비상해버렸다. 반대로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부동산을 잡지 않고서는 거품경제로 인한 허장성세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 것이다. 말하자면 국가적 과제 이전에 정권적 안정기반을 위해서도 부동산 목줄 씌우기는 피해갈 수 없는 길이다.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것은 없지만 핵심쟁점으로 공감대를 얻고 있는 토지공개념은 결국은 사적권리를 제한하자는 취지다. 과거 정권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으나 택지소유상한제는 위헌결정을 받았고 토지초과이득세는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져 있는 만큼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미궁일 수밖에 없다.

부동산을 잡는 수단은 과연 그 것밖에 없는 것일까. 합헌 범위 내서 토지에 공개념을 접목시키자는 움직임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그 같은 범위 내에서 나올 수 있는 대책이란 사실상 정책적 제약에 불과할 뿐이다.

예를 들어 기반시설부담금이나 개발이익환수제 그리고 분양권 전매금지 등의 복안으로 투기와 편재에 의한 양극화를 치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뭔가 난해하고 어려운 일에 부닥칠 경우 가장 손쉬운 해결책을 상식에 따르는 일이다. 토지나 주택이 날개를 다는 이유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변질되었을 뿐더러 어떤 생산재보다 큰 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소위 한탕주의를 파생시킨 원흉인 것인데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본래의 주거개념을 회복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현재의 주택보급률은 세대대비, 거의 100%에 가깝다. 그러나 실수요자는 집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일전에 한 점술가가 몇 십 채의 주택을 갖고 있는 것이 들통나 놀라움을 샀거니와 이런 부동산 투기꾼들을 막으려면 공공임대 주택의 공급을 대폭 늘리는 길 밖에 딴 도리가 없다.

세금 법치 확립부터

그 동안 주택공사와 민간건설업자들이 의무용으로 건립한 임대아파트가 부동산열기와 함께 상당수 분양 전환된 것은 실수요 실책이다. 누구나 원할 때 싼값으로 손쉽게 들어가 살 수 있는 주택환경의 조성이 부동산대책의 출발선이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정부 예산을 기름짜기해서라도 임대주택을 대폭 늘리는 방법을 강구할 일이다.

그런 후 법치를 공고히 함으로써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완성시켜야 할 것이다. 법치란 세제에 의한 형평성 확립을 뜻한다. 돈을 많이 가진 계층들이 땅과 집을 많이 갖든 제재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법을 준수해서 상응하는 세금을 물고 있는가의 여부는 분명치가 않다.

대다수 서민들은 국토의 절반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1% 소수계층이 양심적 납세자일 것으로 믿고 있지 않는 경향이 농후하다. 또 세정당국이 그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도 믿지 않는다. 믿는 것은 하나뿐이다. 세금행정이 세목규정에 따라 완벽하게 집행되고 거기에 인치가 완전하게 배제될 경우 부동산 시장은 저절로 원래 자리로 내려설 것이란 믿음이다.

아널드 토인비 같은 세계적 저명인사도 죽음의 순간에도 국세청 당국자와 인플레이션의 원흉들을 자신을 괴롭힐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회고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자신의 시체에 대신해서 그들에게 미리 혀를 내밀어 두겠노라고 말했을까. 이 말을 살짝 뒤집으면 선진국의 세금행정이 그토록 치열하고 법치에 강건하게 직립 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8월에 발표된 정부·여당의 부동산대책이 호랑이 머리가 될지 고양이 꼬리가 될지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이다. 노대통령이 정권의 운명을 걸겠다고 한 만큼 적어도 종이호랑이는 아닐 것 같다. 세정개혁이 포함되어 있을지는 다만 두고 볼일이다.

/윤석년(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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