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외화로 유행했던, 미해결 사건들을 의미한 ‘X 파일’이 우리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X 파일은 지난 97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사 고위간부와 재벌그룹 핵심 인사가 만나 당시 여당에 거액의 자금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담긴 테이프다.

이 테이프는 YS 정권 시절 안기부가 비밀 도청팀인 ‘미림팀’을 통해 주요 인물들의 대화를 모은 자료 가운데 일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이 테이프는 공개 여부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민감한 내용임에도 만들어진 과정과 테이프 입수 과정이 정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취재를 통해 내용을 확보한 MBC는 보도 여부를 한참 망설이다 법원의 방송금지 가처분 결정까지 받았다. 이 과정에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당사자가 홍석현 중앙일보 전 회장과 삼성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MBC는 테이프에 담긴 목소리 당사자 이름과 테이프 원음을 밝히지 못하도록 한 법원 결정 때문에 보도불가 방침을 유지했다. 결국 지난 21일 조선일보가 먼저 보도했고, 뒤늦게 MBC는 그 날 저녁 뉴스에 보도하는 엉거주춤한 모양새를 취하고 말았다. MBC는 법원의 방송금지 가처분 결정에 이의신청을 내는 한편 법원 결정을 거스르지 않는 법위 안에서 취재 내용을 보도할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은 테이프 내용이 어느 정도 공개되자 바짝 긴장한 모양새다. 특히 당시 집권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움직임은 더욱 조심스럽다. 국가정보원에서조차 이번 도청 사건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다른 테이프까지 공개될 경우 파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청 자료들은 갖가지 불법 정치자금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한나라당이 최근에서야 겨우 끌어올린 지지세를 한 순간에 날릴 수도 있다는 분위기다.

이에 한나라당은 서둘러 도청 자료에 대한 선긋기에 나서고 있다.

김무성 사무총장은 22일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불법 도청은 정권을 비호하기 위한 범죄행위”라며 “지금도 이런 범죄가 진행되고 있다면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략기획위원장인 권영세 의원은 “도청 테이프는 완전히 공개돼야 하고, 국회 차원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보다는 덜하지만 열린우리당도 관련 여부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공보담당 원내부대표인 오영식 의원은 이날 “정보기관의 불법적인 일들에 놀랍고 충격적”이라며 “이 부분에 대해 필요하다면 과거사 진상규명 차원에서 진실을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오 의원은 “현 시점에서 명확한 증거없이 정치권에서 정쟁 소재로 쓰거나 갑론을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선을 그었다.

반면 이 문제에 대해 홀가분한 입장인 민주노동당은 적극적인 비판을 통해 진실을 밝힐 것을 주문했다.

민주노동당은 논평을 통해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재벌과 언론, 정치가 어떻게 야합해 왔는지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당 재벌 총수가 직접 과거 모든 검은 거래들에 대한 실체를 국민 앞에 밝히고 사죄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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