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의 SF변주곡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과 배우 지존 2명이 뭉친 여파는 대단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위기설은 두 사람이 합작한 <우주전쟁>으로 잠재워진 듯하다.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우주전쟁>은 미국보다 9일 뒤인 7일 국내 개봉 전에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는 자본수거율을 보였다. 이런 흥행성공과 더불어 조지 루카스와 함께 SF물의 양대산맥이라는 스필버그의 SF변주곡도 전해주었다.

   
알 수 없는 적, 공포만이 있을 뿐…

△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위기설이 잠들다


지난달 29일 미국에서 먼저 개봉된 <우주전쟁>은 개봉 첫 주말인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7760만 달러(806억 여원)를 벌어들이며,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개봉 6일 만에 1억 1328만 달러(1167억 여원)의 수입을 올렸다. 또한 개봉 7일만에 미국에서만 제작비(1340억 여원) 대부분을 벌어들였고, 일본 등 전 세계 48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어서고 있다.

원작 소설속 대포알 타고 온 화성인

<스타워즈 에피소드3>를 제외하고 올해 개봉된 초대형 서사극, 액션물 블록버스터 대부분이 예년보다 흥행성적이 나쁘거나 흥행에 참패하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상상력과 상품성 위기가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할리우드 최고감독과 최고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우주전쟁>의 고공 흥행몰이를 통해 할리우드 영화의 흥행성은 여전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 스필버그, SF에 현재를 넣다

영국 소설가 H G 웰스의 SF소설의 고전인 ‘우주전쟁’을 원작으로 한 <우주전쟁>은 기존 스필버그 SF물인 <미지와의 조우>, <ET>,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미지와의 조우>나 <ET>처럼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소위 대단한 과학지식을 담았다는 말이 아니라 이 영화의 태도와 이야기 전개 방식 때문이다.

웰스의 원작소설에서는 대포알을 타고 날아온 화성인들이 거대한 트라이 포드와 광선총으로 19세기 영국을 공격한다. 이후 오손 웰스(<시민케인> 감독)는 1930년대 말에 라디오 극을 쓰면서 여기에 새로운 전통을 가미했다.

화성인의 침공은 듣는 사람이 전쟁을 진짜로 알고 달아날 정도로 실재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 당연히 시대배경은 1930년대며, 무대는 청취자들이 사는 미국으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1890년대와 1930년대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2005년의 관객들은 오손 웰스가 상대했던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50년대 초에 이 소설을 영화화한 조지 팔이 상대했던 사람들과도 다르다.

2005년 관객들은 SF 장르에 대해 외계인 침략 아이디어, 우주여행에 대해 원작시대, 심지어 1950년대 이들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다. 심지어 화성에는 화성인이 없다는 것은 상식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인간을 공격하는 외계생물체는 트라이 포드형태라는 점을 빼고는 영화 어딜 봐도 그들이 화성인이라는 증거는 없고 주인공들도 화성인이라는 단어를 꺼내지는 않는다.

영화에서는 끝까지 정체 꼭꼭 숨겨

스필버그 SF물 중 가장 구체적이지 않은 적이 나타나며 <ET>와 달리 외계생물체의 정체를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기존 영화와의 차이다. 오히려 외계에 대한 공포만이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이런 변화는 관객들이 충분히 불만을 가질 만 하다.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극 전개 과정에서 중간중간 삽입되는 설명장면인 인서트(Insert, 혹은 예비서술)에 해당하는 신이 전혀 없다.

오히려 설명의 과잉이랄 수 있었던 기존 스필버그 영화와 비교하면 끝나는 순간까지 외계인의 병기 ‘트라이 포드’가 수백 만 년 동안이나 땅 속에 묻혀 있었다는 점, 그럼에도 그간 인간들이 단 한 대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설정은 무척 당혹스럽다.

이 영화가 개봉한 후에도 불만과 함께 수많은 물음표를 달고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이 적지 않을 것이다.

△ 9·11테러와 여전한 가족주의가 만나다

물론 이 영화에는 미국인의 9·11 테러에 대한 충격과 공포가 분명히 똬리를 틀고 있다. 뉴욕의 마천루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다.

비록 공포의 근원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도로가 갈라지고, 빌딩이 무너지고, 고가도로가 주저앉고, 뉴욕 시민도 레이저 무기를 맞고 순식간에 먼지가 되는 등 공포를 느끼는 미국인들은 4년 전 TV에서 보았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피바다 이룬 들판 영상 등 공포 더해

딸 레이첼(다코다 패닝 분)의 “폭탄 테러예요?”라는 대사나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 피바다를 이룬 들판,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레이저 광선 등 장대한 영상도 공포를 배가한다.

이와 함께 기존 스필버그 영화로는 극히 이례적으로 ‘블루 칼라’(부두) 노동자를 주인공(레이 페리어, 톰 크루즈 분)으로 한 점은 특징적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제법 면밀한 계산이 깔려있다. 주인공 페리어를 ‘감정 이입의 대상’이 아닌 ‘관찰의 대상’ 및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는 ‘이야기 창’으로 만들어 놓았다.

외계인의 침공이 ‘전 지구적 재앙’임에도 영화 속에 묘사되는 사건은 그저 페리어의 개인사이자 가족사일 뿐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얘기는 축소된다. 즉 스케일은 굉장히 크지만 얘기는 작은 묘한 영화를 시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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