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하찮은 욕심이 빚은 ‘개발논리’를 인간이 만든 가장 ‘추악한 문화’라고 규정하는 스님이 있다. 이 스님은 독재권력이 사라진 자리를 자본이 대신 꿰차고 앉았다고 말한다.

그 추악한 문화를 바꿔보고자 스님은 4년이란 시간을 오롯이 천성산과 도롱뇽을 위해 바쳤다. 스님은 말한다. 나라의 발전도 좋고 국민의 편의도 좋다. 대신 그 논리에 묻혀 죽어갈 수많은 생명들을 잠깐이라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 생태계의 보물창고 천성산을 지키기 위해 2002년부터 무려 다섯 차례에 걸쳐 300일 남짓 목숨을 걸고 단식을 했던 지율 스님이 29일 경남도민일보를 찾았다.
홍세화·이이화·김재용·박노자씨에 이어 경남도민일보가 마련한 다섯 번째 강연에 나선 지율 스님은 100여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봐야 하나’를 주제로 강연했으며, 참석자들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터널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천성산 자락에 가만히 서서 한참을 있어 봅니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너무나 평온한 산입니다. 하지만 이내 그 사이로 비명이 들립니다. 산이 지르는 외마디 비명입니다. 말 못하는 산이 제 몸을 다 내주고 아프다고 소리치는 그 소리가 제 귀에는 너무도 또렷하게 들립니다.”

‘천성산 지킴이’를 자청하고 고속철도 천성산 구간에 터널 뚫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를 하자며 4년을 싸워온 지율스님이 산이 겪고 있는 아픔을 걱정하며 한 말이다.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봐야 하나’라는 주제로 29일 저녁 7시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에서 열린 지율스님 강연회 자리.

강당을 빼곡이 메운 100여명의 시민들은 스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몰입했다. 에어컨 바람이 싫다는 스님의 요청으로 강당은 찜통처럼 더웠지만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스님의 말에 귀를 세운 시민들의 눈은 더 빛났다.

스님은 며칠 전 아는 이의 사진전을 보기 위해 부산민주공원에 들렀다가 처음으로 전태일의 얼굴을 봤단다. “익히 듣고는 있어서 인지 생전 처음 보는 얼굴임에도 낯설지 않더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

전태일의 얼굴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땀과 피와 눈물의 항쟁사를 보았던 것일까. 스님은 이내 그 연유를 털어놨다. “수많은 이 땅의 전태일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 정도 민주주의의 기틀을 잡은 것 같다. 하지만 독재와 권력의 억압에서는 어느정도 해방됐는지 모르나 아직까지 자본, 즉 돈의 논리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스님의 말이 이어진다. “자본에 휘둘리는 개발논리 탓에 지금 우리의 산이 어떤 모습인가? 산에 사는 생명들이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알려고 조차 않는다.”

스님의 어조가 더욱 분명해졌다. 우리나라에는 1000여개의 터널이 있다. 앞으로 그 만큼 더 생길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산이 울고 있다’는 식의 감성만으로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수년간 천성산을 400번 오르며 산을 봤다. 이미 산은 내가 되었다. 그 때문의 나의 주장이, 나의 목소리가 감성적으로 비쳤으리라. 하지만 결코 나는 이성과 숫자, 과학과 논리로 ‘도롱뇽’과 ‘천성산’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접근법이 낳은 폐해가 너무도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성으로 숫자로 과학으로 자본으로 천성산을 처다 보면 산이 가진 진짜배기 가치를 놓치게 된다. 생명의 가치를 놓치는 것이다.

스님은 지금은 볼 수 없는 호랑이가 이 땅 환경이 처한 현실을 대신 말해준다고 했다.
“삼천리를 호령하고 다녔을 호랑이를 이제는 찾을 수 없다. 외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나 동화책으로만 만날 수 있는 호랑이, 자연을 그리고 환경을 허물고 뚫고 뭉개고 잘라버린 인간이 호랑이를 죽인 것이다. 인간의 문화가 생명의 삶터를 앗은 것이다. 세월이 흘러 도롱뇽도 사라진 호랑이처럼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

인간으로부터 공격당한 환경이 이제는 그 비수를 인간을 향해 겨누고 있다고 스님은 강조했다.

“얼마전 제주도 강연 때 아토피 피부염을 앓는 자녀의 부모를 만났다. 부모는 처음에 병원치료에 의존했다. 하지만 ‘왜 우리 아이가 가려울까’라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아이의 피부가 가려운 것이 아니라 지구가 가렵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아이를 통해 알리려고 우리 아이의 피부를 가렵게 만들었다’라는 것이다. 너무 현명한 판단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율스님은 이제는 우리가 잘못 선택한 일그러진 ‘문화’를 곧추 잡아야 할 변화의 기로에 섰다고 말한다.

“수조원의 손실을 본다 할지라도 도롱뇽 한 마리, 작은 생명 하나 살리기 위해 마음을 모을 준비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세계 문화의 중심에 당당히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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