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사전 자료집 발간해 지율스님 반발

지난 2월 지율스님의 100일 단식으로 이뤄진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천성산대책위원회의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환경영향 공동조사가 넉 달이 지난 지금까지 착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고속철도 터널이 뚫려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자료집을 공단에서 배포한 바람에 일어난 일인데 지율스님은 공개 사과를 요구하는 반면 공단은 사과할 내용이 없다는 입장이어서 착수가 더 늦춰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천성산에 대한 공동조사는 환경단체와 공단이 제각각 조사위원을 정해 내용과 방법에 대해 합의하는 한편 시추와 답사에 필요한 여러 인·허가를 낙동강유역환경청이나 내원사에서 받는 등 준비 작업이 지난달까지 진행돼 왔다.

그러나 지난 5월 초순 공단이 2002년부터 최근까지 천성산 터널 관통을 둘러싸고 일어난 공방과 사건을 모아 만든 자료집을 발간 배포한 일을 두고 지율스님이 공동조사에 악영향을 끼치기 위한 계획적인 행위라며 반발했다.

이에 따라 공단과 대책위는 지난 17일 대전에서 조사위원 전체 회의를 열었으며 이 자리에서 고속철도건설본부 본부장은 “지율스님이 자료집의 무엇이 잘못됐는지 서면으로 일러주면 이것을 바탕삼아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명과 사과가 이뤄지면 곧바로 공동조사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기도 했으나 공단이 “검토 결과 사과할 내용이 없다”고 밝히는 바람에 공동조사 일정이 어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는 국면이 되고 말았다.

공단 관계자는 28일 “자료집은 그간 진행돼 온 천성산 터널 관련 소송과 환경영향평가 등 일반적인 내용을 담았을 뿐”이라며 “지율스님의 항의서한을 검토했으나 설명이나 해명은 필요할지 몰라도 잘못이 있어서 사과할 부분은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율스님은 서한에서 그간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고 정밀조사를 하지 않았으며 2003년 진행된 노선재검토위 활동도 잘못이 있다고 했지만 공단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이같은 내용을 담은 답신을 29일 발송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밀양대 최송현 교수는 “건설본부 본부장이 17일 회의석상에서 분명히 공개 사과하겠다고 했다”며 “자료집도 공단에 불리한 민원이나 내용을 자기 입장에 맞춰 설명하는 식으로 만들어졌다”고 반박했다.

같은 조사위원인 녹색연합 서재철 국장도 “정부와 공단 쪽에서 판을 깨려는 것 같다”며 “답신이 오면 논의를 통해 대응 방침을 정하겠지만 공동조사가 순탄하게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공단은 문제의 자료집을 지난달 초순 5000부 인쇄해 이 가운데 3800부를 부산 지역 변호사 사무실이나 법관 등 법조계와 대학·학술단체·도서관·신문·방송 등에 집중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2월 3일 합의된 내용에 따르면 양쪽에서 7명씩 추천해 14명으로 위원을 구성해 3개월 동안 고속철도 터널 관통이 천성산의 지하수·지질·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다.

당시 정부는 조사에 영향을 줄 만한 행위는 않기로 약속했는데 합의된 조사 결과가 나오면 그대로 하되 그렇지 않을 경우는 대법원에 자료를 내고 그 판결에 따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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