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인 25일, 한국전쟁 발발 55주년을 맞아 민간인 학살의 현장 거창에서 문학축전이 열렸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주최측인 한국문학평화포럼과 거창작가회의의 ‘전국 규모 문학행사’라는 설명과는 달리 ‘동네 잔캄를 면치 못하는 모습을 보여 형식적인 행사 기획이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웬만한 문학 행사에는 으레 따르는 학술 세미나 하나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김준태 시인이 ‘거창 사건과 통일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지만 이는 단순히 거창 사건이 많은 민간인이 학살된 천인공노할 사건이었으며, 시를 노래하고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 이 땅의 통일사업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당부를 덧붙이는데 그쳤다. 나머지는 10여명 시인의 시 낭송이 중심이었으며 노랠무당시인 오우열 씨의 굿 등 몇개의 문화행사가 전부였다.

아마도 ‘전국’이라는 타이틀은 규모와 내용을 말하는 게 아니라 시를 낭송하는 시인과 가수가 경기도·경북·서울 등에서 왔다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했다.

조명 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아 애초 오후 5시30분 시작해 7시30분 종료될 예정이던 행사가 길어질 기미를 보이자 7시께 사회자가 시 낭송 시인들에게 “조명이 없는데다 안개가 껴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으니 인사말은 하지말고 시만 낭송해 달라”고 특별히 주문하기도 했다.

행사가 9시 가까이 이어지자 오우열 씨의 굿과 민예총이 준비한 씻김굿은 어둠 속에서 진행돼 관객들에겐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행사장은 영호강 둔치 잔디밭에서 작은 개인별 은박 스티로폼을 나눠줘 좌석을 대신하고 공중에 그물을 친 것이 전부였다.

무대는 걸개 그림과 현수막을 배경으로 바닥에 네모난 천막천을 깔아 대신했다.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참여 문인과 시민도 아주 적었다. 그나마 둔치 위 도로변에 인근의 할머니·할아버지 30~50명이 나와 앉아 한 손으로는 부채질하며 여성 랩 그룹의 ‘젊은이들의 알아듣기 힘든 이상한 노러까지 들으며 행사를 끝까지 지켜본 것이 최대의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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