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오늘도 여전히 ‘공사중’입니다.

아직도 십수 년은 너끈히 버틸 수 있는 하천의 돌담들을 걷어내어 콘크리트로 바꾸고, 교통량이 주말에만 붐비는 길도 확포장하고, 또 그 옆에서는 약간 멀쩡한 포장도로를 내버려두고 굽어진 길 바로펴기 공사를 합니다.

해마다 쏟아지는 각종 사업들

정부는 각 부처대로 보다 많은 예산을 따내기 위해 굵직굵직한 대형공사를 계획하고, 공기업들도 예산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타당성이 검토되지도 아니한 사업들을 해마다 쏟아냅니다. 지자체는 말 할 나위조차 없이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국책사업이란 명분이면 다 해결됩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헌 것 저버리기’식의 새마을운동은 여전히 수 십년 째 진행 중입니다.

낡은 것 없애기, 헌 것 버리기, 새로 사고, 새로 만들기, 새 아파트에 새 물건에 유행 따라잡기가 숨 가쁘게 진행 중입니다. 차량 사용기간이 전세계에서 가장 짧은 나라답게 ‘퍼뜩퍼뜩’ 새것으로 바꾸기, 헌 것 빨리 버리기가 경쟁적으로 계속됩니다. 공짜로 조성된 산과 강과 숲을 싹 밀어버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한 편에 억지로 돈을 들여서 ‘공원’이라며 자연흉내를 내서 만듭니다. 그래도 그것들 없이는 사는 것이 삭막하다는 거지요. 세상의 모든 신(伸)들을 초월해서 물신주의(物神主意)가 세상을 지배한지는 이미 오래입니다.

물건을 새것으로 즉각 교체하지 못하고 시간이 좀 지체되면 경제가 죽었다고 울부짖고, 또 국가는 죽지도 않은 경제를 살리자며 포클레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불안해져서 건설, 건설을 부르짖습니다. 건설경기가 살아나는 것만이 경제가 살고 나라가 사는 줄 아는듯합니다. 그 사이에 건설경기로 인해 얻어진 당장의 이익보다 곧 그 파괴와 죽임의 대가로 수천 배의 손해비용을 물어야 할 상황들이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좀 있으면 또 죽어버린 그것들을 살려야 한다고, 그것이 국가경쟁력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엄청난 돈을 들이부어야 하는 것은 불행히도 정해진 ‘수순’입니다.

조금만 거리를 두고 살펴보면 온통 미친 속도의 경쟁에 정신들이 반쯤은 나가있습니다.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마라톤이야 목적선이 있습니다만, 지금의 군중의 무리는 이 숨 가쁜 경쟁적 달리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볼 틈도, 생각도 못하는 그림입니다. 그저 누군가 앞서 달리니 나도 따라가야겠다, 안 그러면 뒤처지겠다는 생각으로 죽기 살기로 달려들 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고들 있을까요.

얼마 전, 쥐 떼들이 앞다투어 마구 달려가다가 벼랑으로 떨어져 집단 자살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관찰한 과학자들은 최근 이 기이한 현상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이미 속도가 붙은 무리를 이끄는 리더가 길의 방향을 잘못 들어 미처 되돌릴 여유와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대형참사라는 것입니다. 주체할 수 없는 속도가 빚어낸, 너무 간단해서 차마 희극적인 자연다큐를 보면서 왜 지금의 우리네 세상사는 모습이 겹쳐서 떠오를까요.

소각장으로 향하거나 곧 매립될 쓰레기들의 성상을 하나하나 조사해 볼 시간을 자주 가지게 됩니다. 쓰레기 집하장에서 바라본 세상은 특히 우리나라는 절대로 가난하지 않습니다. 분명 우리는 세상에서 몇 번째 손가락에 드는 부유한 나라입니다. 불행히도 태워 없애거나 매립해서 묻어버릴 그야말로 ‘쓰레기’는 10%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재활용 가능한 것, 모두가 돈이 되는 것들을 다 버리고, 태우고 있었습니다. 조금도 망가지지 않은 각종 그릇들, 가구들, 조금만 손보면 사용 가능한 모든 물건들을 내다 버리고 있었습니다.

절벽 향하는 '착시와 망상'

검박하고 절약하기로 소문난 우리나라의 국민성은 과거형입니다. 경쟁적으로 많이 쓰고 새것 쓰고 많이 버리기 시합중입니다. 시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긴장이 조금만 늦춰지면 가난하다고 경제가 죽었다고 호들갑들을 합니다.

아무리 피땀을 흘리며 내달려도 집 한 칸의 값은 잡히지 않는 무지개처럼 어느새 저 멀리 가 있습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그 본질입니다. 그 본질을 투시하지 못한 채 돈이 펑펑 돌아가야, 생산과 소비가 만연해야 세상이 바로 돌아가는 것 같은 착시와 망상은 절벽을 향해 내달리는 마취제와 같습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경제적 부흥보다도 정신적 부흥입니다. 경제를 살리는 일보다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 전자보다 후자가 더 필요합니다. 사람의 생명과 영혼은 물질적 풍요의 추구만으로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 보다 위대한 그 무엇입니다. 그것은 또, 물신의 속박과 저주에서 벗어나 홀연히 깨닫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의 주소를 조감하고 아는 일입니다. 물론 나 혼자 잘 살다 죽으면 되지, 하겠지만 저 전우익 선생의 말처럼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천규석 선생의 말처럼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입니다.

/윤미숙(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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