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55주년 기획발표-한국전쟁시기 경남지역 민간인 학살문제’학술발표 행사가 열리기 전 마산 진전면 여양리 민간인 학살지를 참석자들과 함께 둘러보았다. 경남대 발굴팀이 학살자들의 뼈와 유품들을 죄다 수습해 갔지만, 곳곳마다 이름 모를 이들의 원한들이 서리서리 머금어져 있는 듯 했다. 안내자의 설명을 듣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탄식어를 연방 내뱉었다. 나 역시 설명을 듣고 있으니 자꾸만 그 때 그 시절 참혹한 장면이 떠올랐다.

   
 
 
비단 마산 여양리 뿐이랴. 온 나라 산하 지천으로 흐드러진 진달래처럼, 그 꽃빛깔 아래에는 피칠갑을 한 유령들의 피울음이 어김없이 묻혀 있으리라. 한국전쟁을 앞뒤로 민간인 120만이 학살당했다. 특히 영남지역은 학살당한 영혼들이 가장 많은 곳이다. 혹자는 이를 빗대 “경남에서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면 민주화가 완성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누가, 왜 그랬는지 진실은 땅속에 묻혀있다. 애면글면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의 투쟁으로 학살 피해자들이 ‘이제 겨우 말할 수 있는’단계다.

민간인 학살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학살을 전쟁의 비극으로 ‘이해’하자는 말따위는 하지 말자. 이 ‘시르죽은’소리는 학살 가행자들이 60년 가까이 우리에게 세뇌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겨우 재야사학자들과 몇몇 언론인들만 학살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뿐이다. 이들의 안간힘도 하지만 ‘2%’모자란다. 공공의 이익을 발벗고 싸우는 그 많은 시민단체도 민간인 학살 문제 앞에서는 왠지 모르게 눈 질끈 감는다. 지역에 있는 대학들도 학살문제에 대해선 모르쇠다.

지난해 경남대가 여양리 학살 유해발굴을 벌인 것 외에 달리 민간인 학살문제에 개입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행사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로 내려가는 길에 한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다. “도내 민간인 학살문제를 경남대와 경상대, 창원대의 3개 사학과가 힘을 모아 조사하고, 경남도가 지원하는 모양새를 갖추는 것은 어떨까….”

옛 사람들은 말했다. ‘과거에 눈 어둔 자의 미래는 더욱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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