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지음ㅣ마리서사 | 개혁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2005년, 한국의 개혁 어젠다는 무엇인가. 노무현 정권에 들어서면서 행정수도 이전과 북핵문제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과의 외교전략, 부동산 억제책, 구주류의 쇠퇴와 신주류 386세대의 부상, 과거사 청산 등 숱한 개혁 과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신라시대 김춘추부터 갑신정변까지 당대 개혁정책 나열

▲ 개국공신들을 배반하고 숙청함으로써 세종 르네상스 시대를 가능케 했던 태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악역 대신 세종의 길을 선택해 개혁에 실패했다.
장삼이사들은 이 많은 화두가 과연 진정한 개혁으로 이어질 지 아직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노대통령은 2년 남짓 남은 임기동안 개혁의 실마리들이 하나씩 풀려 ‘개혁 대통령'이라는 감투를 쓰고 싶지만 국내외적인 여건은 개혁과제의 중심을 잡고 뒤흔들고 있다.

또 이 화두들이 노대통령 재임기간에 끝날 단순한 문제들도 아니어서 어쩌면 국민들은 노정권 말기에 또다시 ‘개혁피로증'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개혁피로증은 개혁을 오래 계속해서 국민들이 피로를 느낀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개혁피로증이란 말은 역대 정치 집권자들이 개혁을 잘 못해서 생겨났음에 틀림없다.

국민을 위한 진정한 개혁이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개혁을 한다해도 달갑지 않게 여기는 풍조가 팽배하다.

개혁을 하려면 어젠다가 있어야 한다. ‘즉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도 기존의 가치를 뛰어넘는 어젠다를 제시해야 고통을 감내하는 개혁의 목표가 될 수 있다.'

우리 역사 속에 어젠다를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진정한 개혁론자들이 있었다. 지은이(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소장)는 이 개혁론자들의 진취성과 다양성, 개방성을 통해 현재 우리 사회의 개혁 어젠다를 찾으려 한다.

▲ 정조가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구주류들의 틈바구니에서 개혁을 추진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이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과 같다.
그는 삼국통일을 이끈 신라시대 김춘추에서 의자왕, 숙종, 김육, 조광조, 태종, 광해군, 그리고 정조와 대원군, 갑신정변으로 이어지는 당대의 개혁정책들을 현재 노무현시대의 개혁정책과 절묘하게 대비시켜 놓았다. 그러나 이들의 개혁정책은 그 목적과 시대적 요구, 당대 민중들의 태도에 따라 성패가 뚜렷하게 갈린다.

조선 태종을 거부한 김대중·정조와 노무현 비유 ‘흥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김춘추의 ‘삼국통일'이라는 어젠다와 김유신의 빅딜 때문이다. 지극히 사적인 울분을 신라사회의 개혁과 삼국통일이라는 역사적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킨 이 둘의 대의적 결단은 국민 다수의 동의를 얻어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크다.

반면 백제 의자왕의 개혁은 실패했다. 원인은 ‘예스맨'식 왕권 강화와 어젠다의 부재였다. 강직한 신하는 모두 쫓겨나고 예스맨 신하들만 남아 내부시스템이 붕괴됐다.

신라가 삼국통일이라는 위업을 어젠다로 삼는 동안, 백제는 어젠다를 실천하기 위한 수단인 ‘왕권강화'를 어젠다로 정하는 큰 실책을 한 것이다.

조선 숙종 역시 어젠다 실종으로 개혁에 성공하지 못했다. 왕권강화를 위해 정권교체를 자주 했으며, 과거의 정치와 문화를 지향하는 퇴보적인 정치를 했다.

장희빈, 인현왕후 민씨,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 등 미인계 등장과 정치엘리트들의 폐기 등도 어젠다 없이 방황하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미래지향적이며 진취적인 개혁정신으로 역사를 진보시킨 인물도 있었다.

신분보다 능력을 중시하고 관행보다 제도를 추진한 고려 광종의 법치개혁은 법 위에 존재하던 호족들을 잠재웠다.

노비안검법(호족의 노비가 된 사람을 판별해 과거 신분으로 환원), 과거제, 백관의 공복제도(품계에 따라 의복색을 달리 함) 등은 왕권강화의 목적에 부합한 법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시대를 바꾼 역사상 최고의 생활개혁 제도는 ‘대동법'이 꼽힌다. 대동법은 조선 광해군 즉위년(1608년)에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된 후 정확히 100년 후인 숙종 34년(1708년)에야 전국적으로 실시된 조세개혁법이다.

대동법 시행에 시간이 걸린 것은 그만큼 논란이 많았기 때문이다. 양반지주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따라서 대동법은 100년동안 개혁정치가들의 단골 개혁안이기도 했다.

개혁정치가 중 대동법 확대 실시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었던 김육(조선 인조때)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조선의 근대화는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악역을 자청한 조선 태종과 국익을 우선한 실용적 외교개혁가 광해군, 역사와 시대를 향한 승부수를 두었던 정조도 성공한 개혁군주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조선 태종을 거부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조 시대와 노무현 대통령을 비유한 부분도 흥미롭다.

태종은 개국공신들인 동지들을 배반하고 이들을 숙청함으로써 세종 르네상스 시대를 가능케 했으나 김 전 대통령은 병폐를 청산하는 대신 바로 세종이 되고 싶어해 개혁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또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구주류들의 틈바구니에서 개혁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정조의 시대적 상황과 노무현 대통령이 처한 현실이 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공한 개혁과 실패한 개혁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한 가지다. “개혁의 목적은 구 시대의 청산이 아니라 새 시대의 개창에 있다. 이는 개혁이 미래지향적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마리서사. 308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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