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 위암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날을 목 놓아 통곡한다)’을 읽었을 때 순진하게도 우리들은 서로 말하기를, “위암은 평소 우리 민족의 기개와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높이 보여주어 항일언론인으로 추앙받던 사람이다”하여 언론인뿐만 아니라 온 국민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삼척동자가 그의 항일정신을 오랫동안 환영하여 마지않았다.

위암 선생의 본뜻은?

그러나 세상 일 가운데 예측키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뜻밖에 위암 선생의 친일의혹이 어찌하여 나오게 되었는가. 경남일보 주필을 하고 있을 때 신문에 실린 왜왕 명치의 생일을 축하하는 천장절 기념시가 발단이었다. 이 시를 두고 위암 선생이 썼느니 아니 썼느니 논란이 분분하여 위암 선생에 대한 친일진상규명을 하지 않고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이 의혹으로 인해 비단 우리 근현대사학계뿐만 아니라 언론사학계가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그렇다면 위암 선생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일찍이 위암 선생은 왜적 군대와 작배한 을사오적이 체결한 치욕의 을사늑약의 소식을 접하고 그날을 목 놓아 통곡하며 ‘시일야방성대곡’을 썼다. 후세 사람들은 위암 선생의 이러한 올곧은 기개와 민족정신을 언론인의 사표로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국민 다수의 민족적 감정은 강경하여 오늘날 누구든지 반민족행위에 대한 의혹이 있다면 진상규명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친일의혹에 대해서는 사자명예훼손과 허위사실유포란 것이 죄로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구천에 있는 위암 선생 스스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근현대사의 민족반역자와 변절자들은 어떻는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반민족적인 세치 혀를 날름대거나 헤픈 웃음으로 동족이 죽든 말든 기꺼이 친일파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그러고도 나라를 팔아먹고 민족을 반역하여 동족을 학대한 대역죄에 대한 참회 없이 광복 후에도 대대로 떵떵거리며 행세하지 않았던가.

아! 반만년의 강토와 일제 36년의 역사를 왜적들에게 들어 바치고도 모자라, 4천만 국민들로 하여금 광복 60년의 역사를 친일파의 노예 되게 하였으니, 지금 저 개·돼지만도 못한 망발을 부리고 있는 새로운 친일 지식인과 각종 신친일파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광복 후 반민족적 후손들과 친일파 계승자들이 친일조상과 친일파를 기념하고자 어찌했는지 천하가 다 알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명색이 이른바 ‘항일언론인’이라는 위암 선생의 후손께서는 어찌했는가. 선조에 대한 친일의혹이 일어나면 득달같이 진상규명에 나서지는 못할망정 자숙·자성해야 하는 것임에도 소송을 제기하여, 단지 친일의 진실을 덮어두고 한 때의 항일만을 들먹이며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위암 선생은 경술국치 때 자결한 매천 선생처럼 통곡하며 절필하지도 못했고, 신채호 선생이나 박은식 선생처럼 평생을 바쳐 조국을 되찾는 독립운동에도 헌신하지 못해 그저 총독부 기관지에 친일논조의 글이나 투고하며 살아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한 우리 후손들을 볼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조국독립에 목숨을 바친 수많은 애국자의 영령들을 맞댈 것인가.

살아남고자했던 친일 지식인

오호라! 위암 선생은 경술국치 후 왜왕이 구휼 은사금을 내리자 얼마나 기뻤으면 “조선 인민은 한꺼번에 파도 같은 은혜에 젖었네”라고 찬양할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왜적 군대의 두목 장곡천호도가 총독으로 오자 그를 위해 환영하는 시를 읊은 것도 모자라, 망국의 임금 순종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적국으로 건너가 왜왕을 만나는 일을 두고 ‘일선(日鮮) 융화의 서광이 빛나리라’고 읊을 수 있다는 말인가. 과연 한 때 ‘시일야방성대곡’을 짓고 통곡하던 위암 선생이 진정코 맞던가. 대명천지에 이 무슨 망발인고!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는 속았다. 우리 4천만 겨레여, 친일의 망령으로 노예 된 겨레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왕검 이래 5천년 가까운 민족정신이 위암 선생의 친일의혹으로 어느 날 갑자기 홀연히 망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진상규명으로 민족정기를 다시 회복할 것인가. 정말 원통하지만 상징조작된 위암 선생을 단상에서 끌어내리고 진정한 항일언론인 상을 다시 세우자. 겨레여! 겨레여!

/김경현(경남근현대사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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