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균 지음ㅣ가야넷, ‘그 옛날 사발’ 의 역사에 가슴이 아프다

사발에 얽힌 ‘처절한 역사’ 기록

   
임진왜란은 우리 한국에게 정치 경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커다란 아픔을 남겼다.

특히 한국의 맥으로 계승돼 온 차사발 문화는 어처구니 없게도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뭉텅이째 기술을 내줘 지금까지 뼈에 사무치는 부분이다.

텔레비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다뤄졌지만 사천지역에서 사발을 빚던 한국의 사기장(도조)들이 일본으로 꽤 많이 끌려갔었다. 그 이후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일본인이 차사발 전쟁이라 부르는 임진왜란 때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을 일본인들은 피로인(被擄人)이라 불렀다.

피로인이란 전쟁에 가담하지 않은 민간인, 예컨대 장인, 부녀자, 학자, 어린아이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일본인은 이 피로인들을 제3국에 노예로 팔기도 하고 일부는 포로송환 때 조선에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의 사기장 같은 장인들은 특별히 대했다. 처음엔 조선 사기장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억류시켰다가, 나중엔 각 지방을 다스리는 일본의 영주(다이묘)들이 사기장들을 나누어 가졌다. 이 사기장들은 다이묘들의 명령에 따라 이 곳 저 곳 옮겨다니며 차사발을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400여 년 전에 히젠(지금의 일본 규슈 지방 북서부)에서 나온 도자기를 히젠 야끼라 불렀다. 히젠 야끼 중에서 도기(분청사기)는 카라쯔 야끼, 자기(백자)는 아리타 야끼로 유명하다. 카라쯔 야끼는 지방에서 굽는 도자기다. 카라쯔는 부산에서 비행기로 40여 분, 쾌속선으로 약 3시간 거리에 있는 후쿠오카현 바로 옆 사가현에 속해 있다.

임란때 끌려간 사기장 행적 그려

   
옛날 일본의 도자기 수준은 한반도에서 배워 간 토기(도기)를 빚을 수 있는 정도였으나, 15세기부터 왜구들이 조선 사기장들을 납치해 가면서 유약을 입힌 도자기(시유 도기)를 빚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일본에서 도자기를 빚던 조선 사기장들은 대부분 한반도 최북단인 함경도 회령, 명천 부근의 사기장이었고, 이들이 만든 도자기를 ‘회령 도자기'라 일컬었다.

이 회령 사기장들이 임진왜란 전 일본에 끌려가 왜구의 본진인 카라쯔를 중심으로 서일본 곳곳에서 도자기를 빚고 있었고, 임진왜란 때 남쪽에서 납치된 조선 자기장이 여기에 합류하게 된다. 이것이 대략의 카라쯔 야끼 유래다.

카라쯔에 납치되어 간 조선 사기장들은 안타깝게도 손물레만으로 도자기를 빚던 일본인들에게 발로 차서 물레를 돌려 도자기 형태를 빚는 발물레를 전수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백자를 만드는 기술도 남쪽 사기장들이 일본에 전해주게 된다.

그렇다면 일본 카라쯔 야끼를 대표하는 사기장은 과연 누구일까 궁금해진다. 나가자또라는 일본 성을 가진 사람이다. 현재는 13대인 나가자또 다로우에몽이다. 이 가문은 한요, 우리말로 하면 지방 정부에 납품하는 관요의 사기장 가문이었다.

조선에서 끌려간 사기장, 즉 이 가문의 시조, 초대 나가자또의 고향이 김해인지 김해 부근의 웅천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일본의 옛 문서에 그의 조선 이름이 기록돼 있다. ‘우칠(友七)', 조선식으로 하면 ‘또칠'이다.

게다가 더욱 기막힐 일은 지금 일본에 있는 조선계의 도자기 가마 종사자들에겐 한국민의 의식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또한 일본에서는 임진왜란 때 끌려간 사기장들 중 계속 대를 이어 지금도 도자기를 빚고 있는 사람들이 그 지역을 상징하는 일본사람으로 대우받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그토록 ‘환장'을 하는 ‘이도 차완'을 만드는 귀중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일본 건너간 사발 사진도 공개

   
현재 진해 웅천과 김해, 사천 등지에서 한국의 차사발 문화를 일본으로부터 되찾으려는 이들이 묵묵히 차사발 전통을 계승해오고 있다. 이 책을 펴낸 신한균씨도 과거 일본에 빼앗긴 조선 사발(일본명 ‘이도차완')을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사천에서 태어난 신씨는 조선 사발을 최초로 완벽히 재현해 낸 도예가 신정희 옹의 큰아들로, 지난 10년간 외국에서 국보나 보물이 된 우리 사발을 찾아 직접 차를 마시고 손으로 만지면서 확인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또 현재 양산 통도사 부근에서 작도 활동을 하면서 우리 도자기에 묻어 있는 일본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우리 옛그릇 이름 되찾기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도자기 자문위원으로도 활약했다.

이 책에서 그는 사발에 얽힌 처절한 역사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사발들의 진기한 사진 400여 컷도 공개하고 있다.

차사발은 말이 없다. 그러나 차사발 속에는 우리의 쓰라린 역사와 더불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한국만의 미학이 담겨 있다. 가야넷. 470쪽.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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