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귀신도 벌떡 일어나 일손을 돕는다는 바쁜 농사철이다. 비가 오면 고구마 모종도 심어야 하고, 마늘과 양파를 뽑아내고, 감자도 캐고, 모를 심어야 한다. 정부에서 수매를 하든 말든 수 천 년 우리 겨레를 먹여 살려온 쌀밥을 먹기 위해서는 모를 심어야 하는 것이다. 모를 심고 나면 콩도 심어야 한다. 콩만 심으면 되는 게 아니다. 돈주고 사 먹지 않으려면 온갖 남새와 곡식을 심고 가꾸어야 한다. 그래서 농사철에는 사람만 살이 홀쭉 빠지는 게 아니다. 개도, 염소도, 닭들도 모두 살이 빠져 홀쭉하다. 일은 많고 먹는 음식 제대로 챙겨 먹을 틈이 없기 때문이다.

6월 1일, 농민회 식구들과 함께, 사천 곤양 골짝에 ‘매실따기’ 일손을 돕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갔다. 몇 해째 도시 생활공동체(생협)에 매실을 공급하는 생산회원은 올해 일흔 여덟이고 그이의 아내는 일흔 일곱이다.

일흔일곱 농부와 매실을 따며

이 정도 나이면 그냥 집에서 쉬면서 하루 하루를 편안하게 보내야 하는 나이다. 그런데도 해보다 먼저 일어나 논밭에 나가 해보다 더 늦게 집으로 들어간다. 마치 농사일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부지런히 일을 한다. 나쁜 생각을 가지고 싶어도 일에 지쳐 누우면 잠부터 쏟아진다. 그러니 나쁜 생각조차 할 수가 없다.

매실은 며칠만 늦게 따도 노랗게 익기 때문에 제때에 따지 않으면 ‘상품가캄가 떨어져 똥값이 되고 만다는 것을 생산회원은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여기저기 일손을 구하기 위해 전화통 앞에 앉아 밤늦도록 전화를 건다.

돈을 준다는데도 일손을 구하지 못해 애가 탄다. 하루 임금을 일이십 만원 남짓 준다 하면 서로 일하겠다고 몰려들 테지만, 그렇게 주고 나면 매실을 따서 팔아도 몇 배로 적자가 날 것이 뻔하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우리는 그런 처지를 잘 알고 있기에 바쁜 일정을 뒤로 미루고 매실밭으로 간 것이다.

돈만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보기를 들면 성당이고 예배당이고 절이고 지어서 돈이 안 된다면 누가 짓겠는가. 의사고 한의사고 약사고 교사고 교수고 박사고 변호사고 할 것 없이 돈이 안 된다면 누가 그 따위 일을 하겠다고 ‘머리 터지도록’ 돈을 들여 공부를 하겠는가. 우리는 모두 돈에 미쳐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매실을 따는 일은 힘들고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일손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돈만 되면 아무리 힘들어도 똥파리처럼 몰려들지 않겠는가.

농사 지을 사람이 없다

아는 얼굴에 어쩔 수 없이 불려온 젊은이들(?)은 매실나무 아래 먼저 자리를 깔고, 대나무로 매실나무가지를 쳤다. 함께 간 농민회 식구들을 빼고 나면 가장 젊은 사람이 일흔이 가까운 농부다. 자리에 떨어진 매실을 주워 포대에 넣는 일을 하는 할머니들의 나이도 거의 칠팔 십이 지났다. 농촌에서 나이 쉰이면 새댁이고 예순이면 헌 새댁이고 일흔이면 아지매고 여든이 넘어야 할머니라 부른다고 한다. 나는 아지매들과 그리고 할머니들과 함께 점심을 나누어 먹고 잠시 쉬는 틈에 이렇게 물었다.

“할머니, 10년 뒤 우리 농촌은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농사지을 사람이 없으니 어쩌겠는가. 우리 노인들 죽고 나면 끝나는 거지.” “끝나다니요? 끝나면 어떻게 되는데요?” “모두 다 수입해서 처먹고 살겄지. 내 아들녀석들도 아무도 농사 안 지으려고 해. 며느리고 손자고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을 싫어해. 오늘도 아들녀석한테 매실 따러 올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까짓 거 돈도 안 되는데 내버려 두라’는 말만 하고 전화를 탁 끊어. 세상이 망할 징조여.” “할머니, 언젠가 식량을 수입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면 어쩌려고요?” “그때 되면 나 죽고 없어질 텐데 무슨 걱정이야.”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우리는 죽고 나면 그만이지만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우짜노. 먹을 게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먹을 게 없으면 도시도 나라도 다 사라지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소중한 농사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도 지으려고 하지 않으니, 이 나라가 올바른 정신을 지닌 나라가 맞는지 스스로 물었다. 돈만 쫓아서 살아가는 짐승보다 못한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환경이 오염되어 기름 값보다 비싼 생수를 사 먹어야 하고, 온갖 이름 모를 병들이 자라나는 아이들을 괴롭히는데 나는 그 동안 어디에 있었는가. 나는 누구란 말인가.

지금도 이 땅 곳곳에서 병들고 늙으신 농부들이 꼬부랑 허리를 부여잡고 농사를 짓고 있는데, 나는 도시 어느 한 구석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 컴퓨터와 자동차와 시멘트를 씹어먹으면서 살아온 나는 누구란 말인가.

/서정홍(시인·한국가톨릭농민회 경남연합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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