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유치원에서는 6월이 되면 ‘이웃’을 주제로 활동하게 됩니다. 유아들의 관심을 ‘나’에서 늘 다니는 유치원, 그리고 나와 함께 사는 가족에서 좀 더 넓은 ‘이웃’으로 그 범위를 넓히는 시기입니다. 달게 마시는 요구르트나 우유, 소식을 전해주는 신문, 자주 먹는 피자나 닭튀김들은 누군가가 날 위해서 현관까지 가져다 준다는 것, 학교에서 늘 사용하는 화장실도 깨끗이 해주는 손이 있으며 점심때면 따뜻한 급식을 준비하는 아주머니들과 집주변의 세탁소, 미장원, 이발소, 무엇인가를 팔고 있는 슈퍼마켓, 시장, 대형마트에다 관공서인 경찰서, 소방서, 우체국과 아플 때 찾아가는 병원까지 늘 생활 속에서 접하는 집 밖의 동네를 ‘이웃’이라고 묶고 연관성을 찾아 줄을 이어 체계화합니다.

우리 ‘이웃’ 에는 누가 사나

그래서 6월이 되면 유아들이 유치원 밖으로 자주 나옵니다. 우리동네도 돌아보고 각종 관공서를 견학하며 시장에 가서 장을 보기도 합니다. 보기만 해서는 양에 차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접 해보기도 합니다. 가게놀이, 병원놀이, 우체국, 경찰 놀이 등등. 이렇게 요란스럽게 한 달이 넘는 기간을 보내는 이유는 ‘이 세상이 나의 삶에 이렇게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는 구나!’ ‘그래서 세상은 함께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로구나!’ 더 나아가서 ‘나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하는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은 학교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님과 사회구성원 모두가 그야말로 함께 노력해야 생기는 것입니다. 유치원 아이들과 시장에 가면, 좁은 시장 골목에서 물건을 사려는 어른들에게 이리저리 채어가며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묻기도 하고 아무리 말려도 호기심으로 물건을 슬쩍 만지기도 하면서 신기한 것이 눈에 띄면 환호성을 지르기도 합니다.

이런 요란스런 아이들을 대하는 상인들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귀엽다는 듯 다정한 눈빛으로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하고 물건을 살 때 덤을 더 얹어 주는가 하면 장사도 잘 안 되는데 시끄럽게 군다며 야단치고 점포 앞에서 아이들을 빨리 몰아내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회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러 나온 아이들에게 이런 엇갈린 반응은 한 울타리라는 ‘공동체 의식’보다는 친절하고 고마운 어떤 개인과 불친절하고 무서웠던 한 사람을 느낄 것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레지오에밀리아에서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도시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유아들의 교육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작은 예로 학교에서 슈퍼마켓을 견학하고 싶다고 알리면 그 슈퍼마켓에서는 견학 시간 동안 셔터를 내리고 아이들이 충분히 탐색할 수 있도록 하며, 지역사회에서 생산되는 모든 물건들은 학교에서 원하기만 한다면 두드리고 굴리고 만들 수 있는 교육자료로 쉽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학교의 축제와 행사는 도시 전체가 함께 공유하며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 속에서 아이들은 교육을 받고 ‘사회’를 받아들입니다. 큰 공단을 자랑하는 창원에서의 공장 견학은 안전과 회사의 사정들 때문에 허락을 받아내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아파트 단지는 쉽게 생겨나도 공부할 학교 터 마련은 쉽지 않으며 그나마 코딱지 만한 운동장은 전교생이 뛰놀기에 너무 좁습니다.

케케묵은 수도관을 청소하기 위해 3일 동안이나 단수하겠다던 시의 행정은 어린이집을 포함하면 30여 만명 학생들의 급식이 3일이나 중단되고 화장실 사용이 어렵다는 것을 고려에 넣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맞벌이 부부의 아이는 점심을 굶기도 했고 함께 먹던 점심을 각자 해결하느라 온 도시가 정신 없었습니다.

‘여럿의 힘’ 이 더 강하다

우리는 각자 해결하는데 아주 익숙해져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의 성적이 떨어져도 부모의 능력으로 사교육을 받아 해결합니다. 사회 공동체 속에서 함께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려지고 개인이 책임지는 모습은 사회전체를 상당히 경쟁적으로 만들어 냅니다.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서로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며 함께 해결해야할 동반자가 아니라 싸워서 물리치고 떨궈 내야하는 경쟁자들의 모임이 되고 맙니다. ‘내가 안했는데요’ ‘저는 잘 못해요’라고 많은 아이들이 자주 말하곤 합니다. 내가 하지 않았으니 주변이 더러워도 상관없다는 말이고 남보다 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담긴 말입니다.

그러니 내신으로 대학을 가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얼마나 불안하고 삭막하게 학교생활을 하겠습니까? 사회적으로 배려 받지 못한 아이들이 자라나서 사회에 애착을 갖고 ‘공동체’또는 ‘함께’가 줄 수 있는 따뜻함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랏일을 맡아하는 유명한 사람들의 자제 분들이 앞다투어 국적을 포기하는 일도 생겨납니다. 뛰어난 나 혼자만의 힘보다는 함께 하는 여럿의 힘이 더 필요하고 의미 있을 것입니다.

/안호형(창원성주초교병설유치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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