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육회 초록나물 ‘맛있는 조화’

진주의 전통음식인 비빔밥을 3대째 계승하고 있는 천황식당. 1929년에 시작해 84년간 중앙시장에 터를 잡고 살아온 팔각형 기와집에서 옛날 가옥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진주 비빔밥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싸움에서 의병과 군·관·민 그리고 돌멩이를 나르던 부녀자들의 식사 제공을 위해 생겨난 음식이다. 전주비빔밥이 나물 그릇이 따로따로 나오는 것과 달리 한 그릇에 담아 먹는 게 진주 비빔밥의 특징.

현재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정희(52)씨는 시할머니 때부터 시어머니를 거쳐 가업을 물려받았다. 연탄·석유가 없던 시절 나무정글이(땔감 장)가 열리면 나무 팔던 사람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기 위해 시할머니가 국밥을 판 것이 천황식당의 시작이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변해 고관들이 식사를 하러 오던 고급집으로 됐다. 옛 진주MBC 자리가 옛날에는 법원이어서 고관들이 재판하러 와 당시 유일한 식당이었던 이 곳에서 밥을 먹었다고. 역대 대통령도 다 다녀갔다고 한다. 오랜 세월 터를 지키고 있으니 있을법한 일이지만 맛을 빼놓고 유명세를 얘기할 순 없을 것이다.

옛날에는 다방이 없어 작은 방이 많은 이 집이 맞선 보는 장소로도 유명했는데 천황식당에서 맞선을 보고 결혼을 해서 아들·손자까지 본 노부부가 추억을 찾아 자식들을 데리고 오기도 한다. 노부부는 많이 변했지만 천황식당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음에 추억에 잠기는 모습을 종종 본단다.

현재 건물은 6·25폭격을 맞고 다시 지었을 뿐 모든 것이 옛날 것 그대로다. 당시 물자지원을 받은 통나무와 나무못을 박아 만든 식탁을 두고 손님들이 진품명품에 내라고 추천할 정도다.

식당 이름이 ‘천황’이라 일본 천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기도 한단다. 그러나 주인은 새‘황’자를 쓴다며 해명한다.

비빔밥이 나왔다. 빨간 육회에 초록나물이 색깔이 예쁘다. 어린배추, 고사리, 속데기, 호박, 잔파, 무, 양배추, 콩나물, 숙주 9가지 나물에 소 엉덩이살(육회)을 담고 직접 담근 재래식 고추장을 얹은 다음 전통 방식 그대로인 천연조미료를 한 숟갈 넣으면 감칠맛 있는 육회비빔밥 완성. 비빔밥에 들어가는 천연 조미료가 다른 집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독특한 맛을 낸다. 비빔밥에 흔히 들어가는 계란 프라이는 찾아 볼 수 없다. 계란 대신 육회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곁들여 나오는 국도 보통 콩나물국을 내는데 반해 천황식당에서는 소고기 선짓국을 낸다. 소피를 걸러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져 나온다. 선지가 들어가서 그런지 맵싸한 맛보다는 고깃국 맛이다. 무, 파, 고사리, 쇠고기, 선지 건더기가 듬뿍 담겨져 있다.

비빔밥을 잘 비비려면 젓가락을 사용해야 한다. 숟가락으로 팍팍 비비는 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러면 비비는 만큼 맛이 없다. 젓가락으로 비벼야 밥이 안 엉키며 밥알이 살고 나물이 골고루 섞인다.

젓가락을 이용해야 나물에 밴 참기름의 고소함이 밥에 골고루 퍼져 다양한 맛이 어우러지고, 육회도 쫄깃한 맛을 내면서 나물은 아삭한 맛을 머금는다. 같이 나오는 깍두기·동치미·오징어 무침과 시큼 짭짤한 배추김치를 밥숟갈에 얹어 먹으니 그 맛의 조화 또한 일품이다. 이 집의 시큼한 묵은 김치 맛을 찾아 임신부가 일부러 오기도 한단다.

손님들은 비빔밥 한 그릇씩 뚝딱 비우고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역시 비빔밥은 간편한 한 그릇 음식임을 실감케 한다. 집 뒤편으로 음식에 들어가는 모든 장을 직접 담가 줄세워 놓은 장독 행렬이 또 다른 볼거리다. 칸칸이 나뉘어진 대청마루 위의 방들도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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