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 정의를 훔치다 박홍규 지음ㅣ돌베개

“술을 마시되 취하지 말고, 사랑하되 감정에 매몰되지 말라. 마지막으로, 훔치되 부자들의 것만 건드려라.”(판쵸 비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에 대한 불만 해소법으로 의적만큼 카타르시스 효과를 주는 것도 없다.

우리나라의 홍길동, 영국의 로빈후드, 프랑스의 괴도 뤼팽, 멕시코의 쾌걸 조로, 중국 <수호지>의 양산박 등 역사 속이나 소설 속의 의적은 ‘우리 현실에 대한 저항적 희망을 표현하는 하나의 은유'로 전 세계인에게 회자돼왔다.

의적이 도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들이 단순히 혼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무력으로 남의 돈을 빼앗는 불한당이 아니라, 주먹을 쓰지 않고도 남의 것을 제 것인양 빼앗아갔던 부패한 지배권력층을 정당하게 처단한 심판자요 복수자이기 때문이다. 오만한 권력자들을 약올리고 위정자들의 불의에 맞서 싸워 민중들에게 대리만족을 주었기 때문이다.

역사나 소설 속 전형적인 의적은 주로 농민들로 대표되는 민중 공동체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들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의를 옹호함으로써 민중들에게 지지와 환대를 받았다.

또 이들의 다소 거칠고 과격한 행동은 정당한 복수, 분통 터지는 일들을 수도 없이 당한 피해자의 최종 선택으로서의 복수로 묵인돼 이들의 명성에 한 치의 오점도 남기지 않았다.

의적들의 삶을 더듬어보면 시대의 아픔과 그시절 민중들의 고통과 설움이 뒤섞인 역사와 마주치게 된다. 이 역사는 공식적인 역사기록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다.

러시아 의적 스텐카 라진의 삶은 지주들의 가혹한 착취와 일을 해도 불어만 가는 빚 때문에 끊임없이 도망다녀야 했던 19세기 농민의 삶과, 도망한 농민들이 카자크인들과 돈강 유역에 만들었던 자치 공동체들의 역사와 함께 한다. 카자크 반란의 역사, 러시아 농민 반란의 역사, 나아가 러시아 인민주의 역사를 논할때 스텐카 라진의 삶도 반드시 거론된다.

우크라이나의 아나키스트 의적 마흐노의 반란을 뒤따라가면 러시아혁명의 공식 역사에 가려진 볼셰비키의 배반과, 비록 실패했지만 보수적 민족주의자들과 볼셰비키 양면의 적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자율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실험했던 이들의 감동적인 이야기와 만난다.

멕시코 혁명을 이끈 의적 판쵸 비야의 이야기는 스페인의 아스텍 침공부터 시작해, 멕시코 독립을 거쳐 1910년 디아스의 30년 철권통치에 맞서 일어난 멕시코 혁명의 중요한 순간들이 파노라마식으로 펼쳐진다.

‘꽃의 여왕', ‘도둑의 여왕'으로 불리며 인도 전역을 무대로 활동한 의적 풀란 데비는 가난과 여성에 대한 폭력과 하층민에 대한 억압에 수없이 짓밟혔다. 그녀의 삶은 인도의 가혹한 계급제도와 하층민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밖에도 영국 노팅엄의 셔우드 숲에서 활약한 의적 로빈후드, 열렬한 시칠리아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의적 살바토레 줄리아노, 하이두크 출신의 대표적인 헝가리 의적 로자 샨도르, 남북전쟁 때 남부연합의 게릴라부대 출신 의적 제시 제임스, 가축도둑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 의적 빌리 더 키드와 조선시대 의적 홍길동의 삶의 궤적에서 당시 역사를 끄집어낸다.

법학을 전공한 지은이는 의적을 말할 때 짚고 넘어가야 할 점으로 “의적을 범죄집단이나 혁명 집단과 구분하는 문제”를 든다.

그러나 그는 “의적은 사회의 내부에 속해 있는 반면 범죄집단이나 혁명집단은 사회의 바깥, 지하세계에 속해 있다”며 “특히 범죄집단은 지역 공동체와 교류가 드물고, 그들 자신의 원칙은 공동체의 가치와 규율과는 상관이 없다”고 구분하고 있다.

그는 또 서문에서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의적은 역사적으로는 이미 유물이다. 그러나 의적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박물관에 갇힌 시체만은 아니다”며 “궁극적으로 의적은 없어야 한다. 민중들이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돌베개. 300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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