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만큼 경제등급이 존중받고 있는 곳도 드물다 라고 말하면 의료분야 종사자들은 강한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생명을 다루는 시혜기관으로선 사실 그 같은 냉소적 표현은 거북할뿐더러 부당한 대우로 받아들일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그 같은 가설은 엄존한다. 가령 급행료 같은 것은 인지상정에 속한다 쳐도 병실등급은 눈앞에 바로 드러나는 차별화요, 또 다르게는 병원주의의 발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진 자가 좀 더 좋은 처우를 받는다고 해서 매도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병원이 일정부분 수익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최소한의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일을 두고 비방하는 것은 옳지 못한 태도다.

그러나 평등권을 지켜야 할 병원이 환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일을 저지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루 병실료로 10만원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나 1000원을 내기도 어려운 영세서민환자나 모두가 선택의 기회는 똑같아야 마땅하지만 상위계층은 그것이 지켜지는 반면 하위계층, 다시 말해 건강보험료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다수계층이 제한된 선택을 강요받는 현실이 그것이다. 입원비 중 80%를 건강보험료로 충당할 수 있는 일반병실을 어떤 경우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적으로는 각 병원들이 전체병실의 절반을 일반병실로 운영되도록 규정하고 있어 모자람이 없을 듯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대개 일반병실은 만원이고 고액자부담인 상급병실은 남아도는 예가 흔하다.

이 때문에 경제적 여력이 못미치는 서민환자들이 일반병실을 못 구해 무리하게 상급병실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병원위주의 의료행정이 빚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일각에서 일반병실의 보유비율을 70~80% 선으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성을 얻고 있는 이유인데 이부분에 있어서 구조적 개혁은 의료평등화를 위해 매우 절실하다고 할 것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능력에 따라 입원실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제공이다. 병원 측이 솔선해서 이 부분을 개선할 전망은 희박하다. 예를 들어 수혜자 사정을 감안한 병실의 탄력적 운용이나 타 병원 알선 등의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호텔료를 웃도는 특실이나 독실 등의 병실료를 합리화하려면 일반병실에 대한 기회균등화 대책을 세워야 한다. 감독청인 보건복지부를 밀어놓고 병원 측에 이처럼 말하는 이유는 병원은 자선단체는 아닐지라도 국민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믿지 않을 수 없는 생명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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