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 계곡에서의 담백한 만남...“음식맛에 지역문화 배어 있죠”

“나는 고마 잡식성이라서 이것저것 한 개씩 싸~악 걷어 와서 무몬 됩니다. 그래가 같이 무시더.”

   
 
 
한 달 전 ‘시티투어’ 참가에 도시락을 가져가야 하냐고 물었을 때 마산시립박물관 송성안 학예연구사(사진 가운데)가 한 말이다.

그의 말에서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 느껴진다. 마산사를 연구하는 그가 휴일도 반납한 채 지역민들에게 우리지역의 역사를 홍보하기 위해 반나절이 넘도록 쉬지 않고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에너지 소모가 만만찮겠구나 생각했었다.

연구 힘들면 시원한 계곡 찾아

지난 18일 그를 다시 만났다. 맛난 것을 함께 먹고 싶기도 하고, 막걸리처럼 컬컬한 그의 성격과 문화재에 대한 그의 생각을 좀 더 깊이(?) 알고싶기도 했다. 에너지 소모가 많을법한 그가 추천하는 요리는 아니나 다를까 몸을 보하는 ‘오골계와 오리 불고기’다.

마산에서 승용차로 30분 남짓. 창원을 벗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장유 계곡 입구에 들어섰다. 음식점이 한집 건너 하나 꼴로 줄지어 있는데 이중 가장 입맛이 잘 맞다는 집(송죽가든)으로 꼬불꼬불 길을 따라 올라간다. 계곡이라 그런지 한 낮인데도 바람이 시원하다.

요리집에 들어서자 앵두나무에 앵두가 주렁주렁 열려 있고 그 옆으로 물레방아가 졸졸 물을 뿌리며 돌아간다. 식탁에는 오랜만에 만난 무당벌레가 열심히 걸어다닌다. 맑은 공기 깊이 들이쉬며 나무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송 학예사는 평소 논문을 쓰면 머리에 열이 확 오르곤 하는데 등산을 다닐 여유는 없으니 계곡이 있고 시원한 물과 공기가 있는 곳에서 간단히 밥 먹으며 머리를 식히곤 한단다. 연구라는 일도 참 녹록치 않구나 생각이 든다.

바람소리가 귀를 스칠 즈음 “옛날 금관가야 가락부인 김해 도호부(행정 군사 기능 가진 일종의 광역시 규모의 요충지) 가는 길에 위치한 장유계곡은 원래 김해 산골짜기 오지였으나 김해가 커지고 창원터널이 뚫리며 인근 지역민의 도심 일탈욕구와 맞아 떨어지면서 유원지로 변했다”는 역사적 설명이 들린다.

혈액순환 돕는 오리고기 즐겨

   
 
 
그는 평소 문화재 발굴과 관련해 다른 지역으로 답사를 많이 다니는데 그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집을 찾아 식사를 한다고 한다. 음식은 직접 남아 있는 문화자산으로 지역문화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역사문화유적지가 있으면 지역 음식도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시각에서 접근하기 때문.

음식에 대한 그의 담론을 듣고 있는데 오골계가 나온다. 까마귀 ‘오’,뼈 ‘골’, 닭 ‘계’자, 한마디로 까만 닭백숙이다. “열을 올리는 데 좋아 약용으로 많이 먹는다”는 그의 설명을 증명하듯 열을 식히는 성질을 가진 녹두가 조화롭게 얹어져 나온다. 생선 비늘 벗기듯 검은 살을 제치니 하얀 속살이 드러난다.

한점 입으로 먹던 그는 백숙은 서민들이 제일 해먹기 쉬운 보양식이라며 옛날이야기를 슬며시 꺼낸다. 어릴 때 백숙을 약이라 하여 애들은 못 먹게 하고 어른들만 먹을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다. 그는 어려운 시절 닭을 식구 수대로 다 잡아 먹을 수는 없고 여름철 허한 몸은 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사랑 방식이었다고 결론짓는다.

오리 불고기가 나오자 이번엔 오리 예찬이 시작된다. 기름은 많으나 불포화 지방산이라 살이 찌지 않고 혈액순환을 도와 특히 고혈압에 좋단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음식만이라도 혈액순환에 도움되는 것으로 찾다보니 자연히 오리고기를 좋아하게 됐다고.

오골계
닭하고 오리를 먹다가 동행했던 경남?부산 지역 문학회의 한정호 회장(사진 왼쪽)이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는 말을 던진다. 속담이 던져지자 그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한다고 모두들 머리를 굴린다. 문학가에 역사가다 보니 추론 과정이 다들 그럴 듯하다.

오리가 더 영양가가 있고 비싸게 쳐주는데, 비슷하지만 가치 없는 것을 거짓말로 내놓는다는 의미에 맞지 않다는 것이 출발이다. “옛날에는 오리가 흔했나?”부터 ‘오리를 먹으면 임신부의 손이 붙어 나온다’는 말이 있듯 금기시 품목이 아니었을까? 까지 나왔다. 결국에는 닭은 아무나 먹을 수 있었던 데 비해 오리는 일반화되지 않았었다고 전제하며 “요즘 가치로 치면 오리 잡아 먹고 닭발 내밀 상황”이라고 웃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유적지와 지역 맛집 상관관계”

송 학예사는 어떤 문화재를 가장 좋아하냐는 물음에 팔만대장경을 꼽는다. 정신적, 경제적, 과학 기술, 문화사적으로 한국역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문화재라고 정의했다. 고려시대를 전공한 그는 전 세계적으로 대장경을 만든 나라는 남송?고려?거란 세나라 밖에 없다며 그 가치를 이해시켰다. 일본도 대장경을 만들려고 많이 노력했으나 되지 않자 인출시도에 이어 판본이라도 갖고 싶어 요구할 정도였다고 한다.

“정신사적으로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나오며 불교지식체계의 토대가 있어야 한다”, “이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7년간 제작할 인재도 있어야 하며 나무를 보존 처리하는 과학기술도 뒷받침돼야 탄생할 수 있는 것으로 당시 대장경을 각성한 경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에 따라 강대국을 가늠했다”고 대장경의 의미를 열정적으로 쏟아냈다. 이를테면 현대국가가 핵무기 보유유무를 따지는 것과 견줄만큼의 의의를 지닌다는 것이다.

오리 불고기
문화재 분야의 가장 큰 이슈인 ‘개발이냐 보존이냐’에 대해서 그는 “소득 2만불 시대를 뛰어 넘으면 이 문제가 자연히 정리될 것”이라고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그는 아직은 “국가주도의 개발 논리를 떨치기 어려워 문화재가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했다.

양손을 무릎에 딱 받치고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 그의 모습에서 연구도 저렇게 하지 않을까 짐작됐다. 수더분해 보이는 인상으로 일이든 사람과의 관계든 열심인 송성안 학예연구사와의 시간은 담백하면서도 깔끔했다.

사진/박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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