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수습 10기 박진수라고 합니다. “자기소개를 하나 써라”는 노보 편집실장님의 간곡한 협박(?)에 이렇게 몇 자 올립니다.

솔직히 저는 제 자신이 기자가 될 수 있으리라고 전혀 생각을 못해봤고 더욱이 <도민일보> 주위를 가끔 서성거리며 놀아본(?) 입장에서 자주 보던 이 건물에서 일하게 될 줄 역시 몰랐습니다. 더 솔직해지자면 부족한 실력 때문에 합격하리라 전혀 예상을 못했습니다.

  얼마전 사회부 실습 차 정우상가 앞에서 있었던 ‘산재 사망자 추모대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같이 <도민일보> 입사시험에 응시한 여자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모 인터넷신문에서 역시 수습을 하고 있더군요. 서로를 알아보고 몇 마디 나눴습니다. "좋으시겠어요, 축하해요"를 연발하며 부러운 표정을 짓는 그에게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오히려 제가 과연 그  사람보다 이 자리에 더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한동안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제 성격상….

  대학시절 3년 간 야학교사를 했었습니다. 아직도 우리사회에 이렇게 어려운 이웃들이 있나 하고 하루도 수십 번 느끼며 그들과 울던 나날이 있었습니다. 학업도 내팽개친 채 야학에 전념 했었죠. 주위에서는 “뭐 하러 하냐” “뭐가 돌아 오냐”며 걱정투로, 빈정투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주위사람의 생각과 달리 저에겐 투철한 사명감이나 어떤 의식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단지 아이들이 좋았고 저를 필요로 하는 그들에게 쉽게 등돌리지 못했을 뿐입니다.
  아직 저는 기자로서의 의식과 행동이 자리잡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 글을 읽는 모든 분과 ‘박진수’라는 한 인간을 필요로 하는 어느 현장에도 배신하진 않겠습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라도 달려가리라 다짐합니다.

  기나긴 백수생활을 청산하고 진북 골짜기를 하산한지 언 50일. 아직 짧은 시간이지만 이  기간은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하고도 힘든 나날이었습니다. 새벽공기를 마시며 버스에 올라보긴 10년만이었죠.

그 시간의 정취는 무심코 지나가 버리는 ‘살아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이러한 ‘살아있음’을 느끼며 매일 아침 <도민일보>로 향합니다. 좋은 사람과 인간애가 있는 이곳으로 말이죠.‘살아있음’을 잊지 않게 한  <도민일보>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박진수 조합원

[도미니 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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