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지음/창작과 비평사, 아픔은 아픔으로 마음 속에 남아

다시 오월이다. 오월, 해당화가 진분홍 수줍은 꽃망울 터뜨리고 하얀 찔레꽃 지천으로 피는, 그리고 손톱만했던 은행나무 어린 싹들이 만들어내는 녹음이 제법 자랑스러운 가정의 달, 청소년의 달, 푸른 오월.

하지만 우리의 가까운 과거사에서 빠지지 않는 아니 결코 간과하지 못할 시간이 또한 오월이기도 하다. 기억하고 있듯이 5·16 군사 정변이 오월에 있었으며 초하의 푸름 속에 붉은 피 선연했던 민주화 운동 또한 오월이지 않은가. 시간은 그저 강물처럼 무심히 흐를 뿐인데 그 속에서 역사를 만들어내는 이는 우리들이며, 그에 따른 상처 또한 우리가 안고 살아간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긁힌 자국 나에게 없다 하더라도 아픔은 아픔으로, 상처는 상처로 모두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을.

공지영 소설 <별들의 들판>은 서슬 퍼렇던 군사독재정권 시절 가난한 조국의 재건을 위하여 외화벌이의 일환으로 독일로 인력수출 되었던 간호사와 광부, 그들의 삶을 현재의 시각으로 반추 시켜 보는, 그래서 그 때의 이상과 지금의 현실 사이의 괴리를 풀어 놓는다. 그리고 개인의 삶을 통째로 흔들어 놓고는 점점 기억 저편으로 희미해져가는 그 시절을 고발하는 듯하다. 호수 속에서는 호수의 빛깔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은 ‘베를린'이다. 지금은 통일된 독일의, 그래서 시대적 이념의 상징이 된 그 곳.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먼 그 곳에서 이 땅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오히려 퇴색되지 않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 더 많은 아픔이 이 땅에 젖어 있겠지만 이제는 세월의 물결속에서 씻긴 기억들이 오히려 그 곳에는 현재의 삶으로 머물러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최유정이라는 여인이 딸을 찾아가고, 진수라는 유학생이 광주의 진상을 세상에 알렸던 독일인 위르겐 힌츠페터씨를 찾아가고, 최영명 기자가 임수경 방북에 연루되어 그 곳에서 살 수밖에 없는 사촌 수명을 찾아가고, 아버지와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수연이 헤어진 쌍둥이 자매 나연을 찾아가 역사의 이념에 휘말렸던 그들의 뜻하지 않은 삶을 만난다.

소설 속의 그들이 과거의 누군가를 찾아가서 그 때를 만나듯, 우리가 그 때를 기억하는 것은 과거로 필름을 돌려볼 수밖에 없다. 오월이 돌아오고, 또 오고 오겠지만 우리의 반성과 회한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그 뜨거운 피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지금쯤은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돌이켜야 한다는 듯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지난 일월, 좁다는 우리 땅 안인데도 갈 기회가 그리도 없었는지 나는 처음으로 광주를 방문했다. 처음 광주를 방문하는 날 꼭 그 곳을 가리라는, 그래서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 곳을 몰랐던 나의 무지와 무심함을 반성하리라던 나와의 약속이 무색할만큼 망월동 국립묘지는 멀었다. 어렵사리 찾아간 그 곳 김준태 시인의 시비의 날짜는 1980년 6월 2일 아침이었다.

‘……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 더욱 젊어져갈 청춘의 도시여 / 지금 우리는 확실히 / 크게 뭉쳐있다 확실히 / 굳게 손잡고 일어선다'

어느 시간에서 되돌아 보더라도 그 때의 아픔과 상처들은 오월의 푸름 아래 지는 그늘처럼 늘 함께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류미연(논술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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