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무현ㅣ그림 박순찬, 영웅인가? 기회주의자인가?

‘만화와 박정희. 너무나 이질적으로 보이는 두 존재의 결합'이 보수와 진보 진영의 ‘박정희 만화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뉴스툰이 <만화 박정희>를 펴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왜곡된 신화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자, 박근혜 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가 이에 대응하는 ‘인간 박정희' 만화를 출판하기로 뜻을 모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만화라는 장르에 무거운 박정희를 들이댄 까닭은 무엇일까.

글을 쓴 백무현씨는 “곡학아세를 일삼아온 지식인들로 인해 박정희는 오늘날까지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에 올라 우상으로서 ‘권력'을 누리고 있다”며 “박정희 그를 탓하기 전에 우리 몸속에는 이미 박정희가 들어와 앉아 있다.

내 몸 속에 살아있는 ‘박정희'를 고발하고자 한다. 그 암세포를 그냥 두면 내가 죽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만화 박정희> 발간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박정희에 겹겹이 덧씌워진 포장들을 조심스레 벗겨가며 한 장면 한 장면을 사실에 가깝게' 그려서인지 <만화 박정희>는 한 쪽 한 쪽을 넘길 때마다 한 글자도 놓칠 수 없는 희한한 마력이 있다.

   
만화의 큰 장점인 ‘상상력의 발휘나 화려한 장식과 과장된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는 박순찬씨의 말마따나 무미건조한 진실의 전달 뿐인데도 책장이 빠른 속도로 넘어간다.

두 권 짜리로 나온 이 만화는 1권에서 유신정권의 종말을 고했던 1979년 10·26사건을 담은 ‘궁정동의 총소리'로 시작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내 이름은 다카키 마사오'에서는 박정희가 일본의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진충보국 멸사봉공'(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하고 목숨을 바쳐 국가를 받들겠다)이라는 혈서를 쓰고, ‘천황폐하를 위하여'와 ‘항일군을 소탕하라'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황군장교로 임관한 박정희가 항일군 토벌에 나서는 내용은 박정희의 친일 행위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승만 제거', ‘장면 제거' 등 5·16 군사 쿠데타 음모를 다룬 내용과 권력 강탈의 일환으로 민족일보를 반공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지난 2월 이사장직에서 사퇴한 정수장학회, 즉 ‘부일장학회 강제 헌납 사건'을 다룬 것도 정치적으로 적잖은 소용돌이가 예상된다.

2권에서는 ‘반공 국시의 칼-황태성 사건'을 시작으로 일제 35년을 팔아먹은 6·3 사태, 조작된 공안사건 ‘인혁당 사건'과 경향신문 매각사건, 동백림사건, 이승복 사건과 반공시대 등 반공전성시대의 박정희 할약상(?)을 그렸다.

특히 박정희의 여자 문제를 거론한 대목은 자극적인 장면도 있어 눈길을 끈다.

   
만화라는 장르로 박정희의 왜곡된 신화 정면 비판

김대중과 대통령 선거전을 치열하게 펼칠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세를 지원하기 위해 대전으로 내려간 육영수 여사가 박정희가 유성온천 호텔방에 다른 여자와 있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분노를 삭이는 그림(104쪽 전면)은 유족들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장면이다.

1권 첫 장면과 오버랩되는 형식으로 구성한 마지막 부분 ‘정인숙 피살 사건'(185쪽부터 193쪽)은 10·26 당시 박정희의 여자관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자극적인 기사거리로 제공되는 문세광 사건과 김형욱 실종사건도 궁금증을 갖고있던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은 최근 프랑스 파리 외곽 양계장 살해설을 두고 논란이 한창인데, 박정희가 김형욱에게 권총을 겨누면서 “뭣이 어째고 어째? 이 배신자 놈!!”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묘사(159쪽)돼 이 사건에 직접적인 연관성을 시사하고 있다. 김형욱은 이 만화에서는 서울 근교 폐차장에서 폐차에 깔려 암살당하는 것으로 표현돼 있다.

‘왜곡된 역사나 날조된 신화보다 더 서글픈 것은 세뇌당한 영혼이다'라는 생각으로 펴낸 이 책이 만화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와 박정희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에 알게 모르게 물든 세대들의 의식을 서서히 바꾸고, 나아가서는 날조된 역사가 모두 청산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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