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들아~ 지하도에서 노올자!'


12일 토요일 오후, 창원시 대방동 개나리4차 아파트와 대방중학교 사이를 가로지르는 도로 위. 도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도로 위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달리는 차들로 분주하다.

도로 위의 평범한 일상과는 달리 지하가 시끄럽다. 이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지하도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여느 전시회에 못지 않은 미술작품들이 온통 지하도 전체벽면을 따라 전시돼 있고, 인기연예인의 사진을 오려붙이고 그 위에 올망졸망 글을 남긴 아이들의 작품도 곳곳에 보인다.

다른 벽면에 나란히 ‘짱보고 짱나서 짱한다’는 이름으로 걸린 낙서판에는 아이들이 ‘GOD 짱!’‘우리에겐 이런 공간이 필요해’‘동규야! 사랑한다’ 등 낙서가 빼곡히 적혀있고, 그 옆에는 ‘우리동네 어른, 아이에게 바라기’코너가 있는데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뭔가를 적기에 열심이다.

한쪽에선 흰옷을 맞춰 입은 중학교 또래의 아이들이 먹거리장터와 페이스페인팅.만화캐릭터를 판매하고 또 다른 쪽에선 마을 어머니들이 준비한 풍선아트.도서알뜰장터와 벼룩시장이 열렸다.

온통 어른과 아이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지하도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아그들아~! 지하도에서 노올자~!’라는 프로그램의 첫 번째 놀이마당인 ‘땅속음악회’.

땅속음악회는 대방동과 남양동.남산동.가음정동 등 서로 이웃하고 있는 중학교 학생들과 선생님, 마을어른들과 지역의 시민단체가 함께 꾸민 동네축제한마당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놀이공간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놀이문화공간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자리였다. 남양동 어머니사물놀이패와 대방중학교 사물놀이팀의 신명나는 사물놀이 한판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지하도가 청소년놀이공간으로 자리잡았음을 알리는 퍼포먼스와 함께 어른과 청소년, 지역사회와 학교, 마을과 마을을 이어준다는 의미를 담아 ‘무지개지하도’라는 지하도 이름선포식이 끝나자 이때부턴 아이들을 위한 무대.

아이들은 또래친구들이 꾸미는 댄스에 맞춰 몸을 들썩거려 보기도 하고, 노래자랑에 나온 친구를 목청껏 응원하며 스트레스를 확 날렸다. 아저씨들의 색소폰 연주도 지하도란 공간에서 들으니 색다르고 교사와 제자, 그리고 학부모가 함께 꾸미는 축하연주는 듣기만 해도 즐겁다.

그렇게 아이들은 5시간을 넘겨 무지개지하도에서 그들만의 시간을 가졌다. 친구들과 함께 무지개지하도를 찾은 홍구(16.안남중3)는 “학교 마치면 마땅히 할 것이 없어 노래방이나 PC방.오락실에서 보내는 게 전부예요. 지하도에서 이렇게 놀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잖아요”라며 지하도가 아닌 또 다른 그들만의 문화공간이 더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땅속음악회는 아이들이 학교수업시간에 얻은 아이디어를 활용한 행사다. 어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공간이 그들의 눈에는 더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아그들아~! 지하도에서 노올자~!’ 두 번째와 세 번째 놀이마당은 ‘무대와 필름속의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창원지역 고등학교 연극영화동아리들의 모임이 26일 열리고, 6월9일 동네어른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어르신을 위한 재롱잔치’가 무지개지하도에서 열린다.

행사준비 이렇게

지개지하도가 있는 대방동 일대는 아파트단지가 밀집한 곳이다. 초.중.고등학교에 3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지만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마땅한 놀이공간이 없다.

‘아그들아~! 지하도에서 노올자~!’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놀이공간을 확보해 주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교사가 그 아이디어를 살려주고 지역주민들이 힘을 합쳐 마련한 공동작품.

지하도를 청소년의 놀이문화공간으로 활용해 보자는 생각은 아이들의 생각이었다. 안남중학교 박경화 교사와 아이들이 지역사회관련 수업시간에 5~6명씩 조를 나눠 우리동네청소년놀이공간을 만들 만한 곳을 조사해 가상의 지도를 만들었다.

남양동 농협앞 주차장을 이용해 아지트라는 야외무대로 만들고, 야외에서 영화와 춤.콘서트를 개최할 수 있는 천국전당이란 이름의 공연장, 초등학교 뒤편 풀숲과 오솔길을 이용해 안남서바이벌장, 도심속의 공터를 활용해 음악공간을 만들자는 등 갖가지 의견이 쏟아졌다.

그 중에 선택된 것이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다니는 지하도를 놀이문화공간으로 활용해 보자는 것. 지하도를 놀이공간으로 만들어보자는 결정이 되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지하도’라는 자원봉사단을 만들었고, 학생동아리모임은 프로그램을 짰다.

지역도서관과 사회단체는 관공서의 협조를 구하고 지역주민들은 지속적으로 운영해 나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역할분담을 했다. 이 모든 것은 청소년.학교.시민단체.관공서.지역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준비위와 참여위에서 결정됐다.

아이들과 주민들과 함께 행사를 준비한 박경화(안남중) 교사는 “아이들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니까 주위에서 쓸데없는 생각이라며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처음엔 지하도에서 뭘 할 수 있을까도 생각했었지만 결국 일을 벌이니까 된다”며 함께 고민하면 못할게 없다고 말한다.

결국 청소년과 학교.시민단체.지역주민.관공서가 힘을 합쳐 훌륭한 청소년놀이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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