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을 맞아 필자가 진주에서 진행하고 있는 방송프로그램이 개편되어 새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방송에서 금지곡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다. 많은 금지곡이 있었지만 이날 단연 생각나는 노래가 하나 있었다.

5월 1일은 세계 노동절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 굴레를 벗어던져라 /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 힘차게 타온다 /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 새세계를 펼칠 때 /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 우리를 막지 못해…’

이 노래는 <인터내셔널가>이며, 이른바 전 세계 노동자의 애국가로 불리는 노래이다. 한때 혁명기에는 인터내셔널가가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의 노래였고, 한때 소련의 국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내셔널가는 오랫동안 전 세계 민중들과 노동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범세계적인 노래였다. 인터내셔널가가 탄생된 후부터 얼마나 끊임없이 얼마나 많은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불려졌는지 모른다. 이 인터내셔널가를 말하기 전에 노동절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886년 5월 1일 미국노동자가 자본가에 맞서 총파업을 했던 날을 기려 인터내셔널에 의해 전 세계 노동자의 기념일이 제정되었다. 이 날이 바로 메이데이, 즉 노동절이다. 맑스의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구절처럼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외치며 1890년부터 이 날 메이데이 행사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그 후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을 과시하는 국제적 기념일로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절 행사는 1923년에 있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 메이데이는 기만적인 문화통치의 틈새를 비집고 당시 조선노동총연맹의 주도하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일제는 노동자의 혁명성을 두려워한 나머지 노동절의 강연집회나 시위는 엄단했다.

그래서 1923년 5월 1일 진주의 메이데이는 주로 기념식만 거행했고, 이듬해 있었던 진주의 메이데이 행사 역시 노동자의 시위행렬을 이루지 못했다. 또한 1928년 진주의 메이데이에는 기념식만 할 수 있었고, 처음에 허용했던 강연조차 금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일제는 메이데이 기념식조차 금지하고 메이데이 자체를 부정하고 만다. 아울러 <인터내셔널가>는 물론 프롤레타리아동요 같은 노래도 당연히 금지곡으로 규정되었다.

해방이 되자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는 일제가 금지한 메이데이를 즉시 부활하고 다시 <인터내셔널가>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미군정의 전평 불법화와 이후 들어선 이승만 정권은 메이데이의 날짜를 5월 1일에서 어용노총의 창립일(3월 10일)로 변경했다. 이어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의 군사정권은 개발독재를 하며 산업예비군을 무수히 양산시켰다.

박정희 정권은 노동자의 혁명성을 완전히 뿌리 뽑고자 노동절을 ‘근로자의 날’로 이름까지 변경했다. 이렇게 메이데이는 날짜도 이름도 빼앗긴 채 엄혹한 유신시절 내내 숨죽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인터내셔널가>는 절대로 불러서는 안 되는 금지곡이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1987년 6월 항쟁을 거쳐 노동자 대투쟁 이후 1989년 제100회 세계 메이데이 기념일을 맞아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독재정권이 빼앗아간 노동절을 다시 되돌려 놓았다. 오늘날 메이데이 행사를 당당하게 개최하고 있는데, 1992년 정부는 원래 날짜대로 노동절을 복원했으나 메이데이의 명칭은 근로자의 날로 그대로 두었다.

혁명가와 노동자의 노래

<인터내셔널가>는 금지곡 가운데에서도 특별하다. 그것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치열한 계급투쟁 속에 혁명가와 노동자의 애환이 서린 현장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년 5월 1일이 되면 메이데이가 합법적으로 개최되고 있으나 노동시장의 다양성과 노동자계급의 분화로 현재 노동자의 계급성은 현저히 약화된 실정이다.

노동운동이 사민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는 오늘날 <인터내셔널가>는 어떤 의미를 주고 있을까. 과연 이 노랫말처럼 ‘인터내셔널 깃발 아래 우리가 얼마나 ‘전진 또 전진’했는지 진지하게 뒤돌아 볼 때이다.

/김경현(경남근현대사연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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