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지음/윤정주 그림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가 오는 시간이면 무서워져요. 처음에는 반겨주시는데… 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인상쓰고 소리부터 지르셔서 무서워요. 가출하고 싶고… 항상 소파도 아빠 혼자 차지하시고… 이제 중학교 들어가는데 자꾸 어린애는 끼어들지 말라구 하시고… 공부하라고 하시면서 텔레비전 크게 틀어놓으시구… 제가 받는 스트레스는 거의 아빠 때문이에요.”

어린이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줘야 한다, 어린이들은 어른과 똑같은 인격체라고들 말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최근 일기검사가 어린이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 결정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국가인권위 결정에 반대하는 교사들은 “일기쓰기 지도는 글쓰기 맞춤법 지도 그리고 아이들과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중요한 생활수단”이라는 이유를 든다. 교육효과를 위해서 인권은 다소 무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머리말에서 ‘인권이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말한다. 누군가로부터 함부로 생명을 위협당하지 않고, 내 생각대로 소신껏 행동하고,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도움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권리'라고 설명해 놓았다.

그러나 인권은 가만히 있다고 그냥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인권을 가진 어린이들이 가꾸고 보호해야 한다.

만화로 어린이에 편하게 접근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어린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부모나 어른들로부터 어린이가 무시당해도 마냥 그대로 넘기면 인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어떤 부모들은 이 책(만화)을 보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날마다 술에 취해 엄마와 싸우고 동생을 때리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아이의 고민에 <뚝딱뚝딱 인권짓기>는 “그런 폭력을 눈감아 주어서는 안된다”고 대답한다. 내가 낳은 자식이니까,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니까, 내가 나이 많은 어른이니까, 아이는 어른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식의 고색창연한 권위주의는 이 책 속에서 여지없이 깨진다.

지은이 인권운동사랑방은 “어른 앞에서 아이들의 주장과 의견이 쉽게 무시당하는 까닭은 ‘부양'이라는 틀 속에서 아이들의 인격을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에서 어린이 인권문제의 대부분은 어른-아이의 수직 서열 관계 속에 있다. ‘뚝딱뚝딱 인권짓기'가 이야기하는 인권은, 어린이는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태어났으므로 가정과 사회의 보살핌은 당연한 것이란 기준에서 출발한다.

13개 주제로 꾸며진 만화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의 가치'를 일깨우고 아이들이 남을 배려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남녀차별과 인종차별 등 차이와 차별의 문제를 짚은 ‘같으면서도 달라요',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다룬 ‘당신에게 평화가 함께 하기를', 환경 문제의 인권을 주장한 ‘깨끗한 환경을 사랑해요'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인권문제를 담고 있다.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일러주는 ‘작게 낮게 느리게 함께 걸어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권리를 다룬 ‘사회복지가 필요해요'는 복지차원의 인권을 거론하고 있다.

사람답게 사는 가치 일깨워

어린이의 놀 권리를 다룬 ‘바다 속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얘기하는 ‘생각하고 말하고 전할 수 있어요', 폭력문제를 그린 ‘사랑으로 대해 주세요', 사생활과 비밀을 지킬 권리를 이야기한 ‘나만의 세상을 가질 수 있어요'는 어린이들의 생활과 밀접한 부분을 파헤치고 있다.

인권이라는 딱딱한 내용을 만화라는 편한 장르로 접근시킨 것은 어린이들이 많이 읽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뚝딱뚝딱 인권짓기'는 교양만화월간지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되는 코너로, 지금까지 게재됐던 인권 부분 내용을 모아 출간한 책이 <뚝딱뚝딱 인권짓기>다.

한국을 대표하는 인권운동단체 인권운동사랑방이 쓴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만화 인권교과서'다.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해 온 어린이의 인권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기 권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모든 사람이 인권을 공기처럼 고르게 누리려면 우리나라와 세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지 일깨워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 학교, 길거리, 매일 만나는 사이에도 있어요. 우리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생각. 남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 알쏭달쏭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고민 속에도 인권은 숨어 있어요.’

야간비행. 283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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