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다고 믿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측정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면 무시되어 버린다. 데이비스 보일(D. Boyle)은 그의 <숫자의 횡포(The Tyranny of Numbers)>라는 책을 통해 숫자를 너무 신봉할 경우 발생하는 비측정, 비계산의 희생을 경고하고 있다.

이를 테면 직관, 창조성, 상상력, 행복 등이 희생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숫자로 표현되는 사물의 상태를 거의 매일 접하게 된다.

필자는 최근 한국교육개발원과 통계청에서 발표한 조사결과의 자료를 접하고 한국사회의 지역적 불균형에 대해, 또 지역균형개발의 절실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기관의 조사결과는 각기 주제를 달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결국은 지역의 불균형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4년제 대졸자 10명 중 1명은 사법고시, 행정고시 등 각종 국가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지방대생 고시 매달리는 이유

그 가운데 필자의 눈길을 끌고 있는 항목은 지역별 고시 준비자 비율이다. 지역별 고시 준비자 비율을 보면 호남(제주 포함)이 16.0%로 가장 높고, 강원 12.5%, 영남 12.5%, 충청 9.9%, 서울 8.5%, 경기·인천 7.0%의 순으로 되어 있다.

소위 수도권 지역과 비수도권 지역간의 현격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고 그 중에서도 그동안 중앙정부 주도 경제개발과정에서 비교적 소외된 지역으로 인식되어온 호남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대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다양한 진출통로와 진출기회를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수도권 대학과 비수도권 대학이 사회진출에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고 있다면 이렇게 많은 비수도권 출신 대학졸업생들이 공무원 시험준비에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수도권 지역만이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도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을 필요로 하는 기업체와 기관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면 고시 준비자의 지역별 비율이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자료는 지역간 불균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필자가 지나치게 오버하는 것일까?

지난 26일 발표된 통계청의 ‘시도별 장래인구 특별추계 결과’는 그야말로 한국사회의 지역간 불균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통계청의 추계 결과에 따르면 2010년경에는 서울, 경기, 인천 등 소위 수도권의 인구비중이 전국 인구의 50%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총인구 중 수도권 인구 구성비는 2000년 46.3%에서 2005년 48.3%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2010년경에는 49.9% 수준에 도달하고 2020년 52.3%, 2030년 53.9%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수도권 블랙홀 현상 막아야

면적으로 보면 11.8%에 해당하는 수도권 지역에 전체 인구의 50%이상이 모여 사는 시기가 바로 눈앞에 닥치고 있다. 특히 경기도 지역의 인구유입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일간지의 전면광고를 통해 경기도 지역에 유치된 국내 및 해외 유수기업들의 현황을 경기도가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지역간 자원과 기회의 격차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 수 있다. 기회와 자원이 없는 지역에 사람들이 모여들 리가 만무하다.

통계청의 추계에 따르면 경남의 인구도 2005년도를 기점으로 약간씩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 만큼 여러 가지 여건이 위축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도지사를 비롯한 도당국자들은 자원과 기회의 확보를 통해 지역인재가 지역사회에서 터를 잡고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데 더욱더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앞에서 소개한 최근의 통계자료들은 한국사회의 지역불균형을 보여주는 증거들임에 틀림없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으로의 블랙홀 현상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비수도권 지역의 단체장, 그리고 지역주민들은 중앙정부에 대한 요구수준을 높여야 할 것이다. 지지부진 하긴 하지만 지역균형개발을 핵심적인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현 정부에게는 비수도권 지역으로부터의 집요한 요구가 오히려 정책추진의 에너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시원(경상대 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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