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운이 아제는 할배 재산 다 까먹으면서도 정신 못 차리고 투전판을 드나들었는 기라. 아무리 할배가 말리도 소용 없었제. 결국 빚을 내서 도박하다가 못 갚으니까네 어째 됐겄노? 그 숭악한 읍내 깡패들이 아제 손가락을 다 잘랐다 아이가?” 어렸을 때 소위 ‘짤짤이’라 하여 동전을 손에 흔들어 쥐고 ‘홀짝’ 하거나 일본말로 ‘하나 둘 셋’하며 돈을 걸고 맞춘 만큼 돈을 주고받는 돈 따먹기 놀이에 한참 빠졌더랬다.

폭력, 사행성 오락기 즐비

동네 어귀에서 그 놀이를 하고 있다가 장에 다녀오시던 어머니 손에 덜미가 잡혀 집에 끌려온 그날 밤, 어머니는 조용히 지운이 아제 이야기를 하셨다.

지금 기억에 ‘짤짤이’라는 것을 하면서도 그것이 도박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아버지께 “돈 10원만”하며 졸라서 동전 몇 개 얻으면 동네 아이들과 개수 맞추기 놀이 했던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여겼다. 그런데 만약 어머니께서 모른 체하고 지나쳤다면 그 어린이의 현재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요즘 학교 앞 문구점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것들 중에는 순수한 아이들의 정서를 마비시키는 독약과 같은 것들이 심심찮게 섞여있다.

며칠 전 광주 모 초등학교 문구점에선 필름통 같은 것 속에 눈알이나 귀, 코, 태아 모양의 고무제품이 들어있는 혐오장난감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잘 팔리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모습의 그런 장난감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하니 만든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모두 중형으로 다스려야한다는 분노가 치민다.

또 얼마 전에는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 ‘돈 놓고 돈 먹는’ 미니파친코라는 기계가 버젓이 갖춰져 있어 아이들을 사행심의 나락으로 빠트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갔다. 기사가 나간 이튿날 경찰에서 기계를 철거하고 문구점 업주를 입건했다. 그런 걸 보면 아이들에게 사행성 오락기를 설치해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불법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많게는 수년 동안 문구점 주인은 불법기계로 장사를 해왔고 경찰은 단속도 하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는 이런 사행성 오락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도끼를 들고 싸우며 피를 흘리게 하고 상대방을 끝까지 죽여야 게임이 끝나는 비디오오락기도 당연하다는 듯 설치되어 있다. 아이들은 오락기 앞에서 손가락을 연방 두드려가며 “죽여, 죽여!”하고 열을 올린다. 문구점 주인은 아이들의 이 모습을 보면서 과연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돈만 되면 그만’이라는 어른들의 삐뚤어진 생각이 아이들을 불행의 나락으로 빠트리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모른 체 하는 것도 어른들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게임장이 아닌 일반 업소에 게임기를 설치하도록 한 ‘싱글로케이션 제도’가 시행되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돈만되면 그만' 위험한 발상

말이 한 가게에 두 개로 제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제도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 업소는 거의 없다고 한다. 모두 어른들의 이해타산에 맞추어 제도가 마련되고 이에 따른 어른들의 무관심으로 아이들은 오염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 문구점들은 학교보건법에 저촉을 받는 학교환경위생 정화구역 내에 있음에도 학교장이나 교사들이 감시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려니와 경찰도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 특례법으로 단속할 의무와 책임이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 하기 때문에 학교 앞 문구점의 불법 폭력·사행 오락기가 날로 ‘번창’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이들은 어른들의 미래를 짊어지고 가야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더 언급해 무엇 하겠는가. ‘돈이 되기엷 ‘귀찮기엷 하는 이유로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초등학생들이 ‘코 묻은 돈’을 어떻게 활용하게 하는지는 문구점 주인이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선생님이 학교 안의 교육자라면 문구점 주인은 학교 밖의 교육자다. 그런 만큼 동심이 멍들지 않게 교육자의 양심을 가지고 최대한 아이들을 대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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