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달걀, 삶은 눈동자,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삶은 감자는 눈동자에 젓가락을 꽂고, 목구멍 속에서 검실거리는 노래, 전혀 노래가 아닌 노래, 왜 부르는 지 모르는 노래’(시인의 말 중에서).

지난 한햇동안 ‘시류에 편승한 엽기 시인’이라고 불려 오히려 그것이 엽기적이었다는 김언희(49) 시인. 두번째 시집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를 본 후 그를 만나고 싶었다. 왜 하필 극적인 단어의 나열로 시를 쓰는 것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게다가 뱀띠 시인이라니.

그는 사천시 곤양면을 지나 작은 다리(일명 ‘콰이강의 다리’)를 건너고 시골 들판을 가로지르면 나타나는 자그마한 시골학교의 영어교사다. 학교에서 벗어나 근처에 있는 다솔사 안 전통찻집에서 장미홍차를 마시며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난 늙는 게 좋아요. 늙으면 운전도 배우고 차도 마시고 좋은 곳으로 여행도 다니고….” “난 영화보는 것을 좋아해요. 사람많은 영화관에서 말고 집에서….” “현실바깥으로 데려다주는 영화가 좋아요. 컬트나 SF같은….”

그는 말마다 끝맺음을 잘 안한다. 상대방을 긴장하게 하지만 은근한 여운이 싫진 않다. 그의 시에 대한 이야기는 선문답과 다를 바 없다.

-시에 대한 비평이 많은데요.

“두번째 시집 나오고 나서 비평에 대한 공포감에서 벗어났죠. 난 그렇게밖에 쓸 수 없어요. 남이 뭐라해도 고쳐질 수 없으니까.”

-늘 마음에 품고 있는 건 뭐죠?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걸 알면 더이상 시를 안써도 될 것 같아요.”

-시는 왜 쓰죠?

“시한테 온전히 나를 비워줬을때 만족감보다 자유가 있어요. 사유·언어·내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나의 무화(無化)땜에 시를 써요.”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에게 비평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요.

“예술에는 성이 없어요. 여성예술, 남성예술 따로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진정한 예술가(인간)라면 양성을 다 가지죠. 성이란 별거 아니예요. 목숨을 걸고 싸울 가치가 없어요.”

-남성들은 선생님 시를 좋아하고 여성들은 그렇지 않다던데.

“내 글에 대한 비평은 어떤 것이든 좋아해요. 냉정한 비평이 아닌 조악함은 별로지만. 페미니즘을 권력화하는 것은 옳지 않죠.”

-앞으론 어떤 시를 쓰실 건가요.

“가고싶은대로 다 갔으니까 뭔가 다른 길이 보일 거예요. 시 자신이 다른데로 가요. 나는 그럼 겁먹지 않고 따라가죠. 처음엔 겁났어요. 이런 단어들이 내 자신에게서 나오니까 그걸 극복하기 힘들었어요. 억압이 예술의 영토죠. 공포가 날개를 만들고요.”

시를 갖고 아무것도 안하려고 했었기에 ‘엽기시’라고 평가되는 시를 쓰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그는 자인한다. 밥그릇을 챙기는 데 관심도 없고, 늦게 시를 시작했고, 죽느냐 쓰느냐 하는 절박한 심정에서 쓴 시이기 때문에 그는 지금 ‘자포자기’상태다. 시하고의 싸움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가 원하는 대로 망해가는 일에 공포심을 갖지 말자고 다짐한 것이다.

중학교때부터 시를 썼던 그는 24세에 결혼해 두 딸을 기르고 33세까지 살면서 내면의 시를 못 쓴 것이 목까지 꽉 차, 두려움없는 큰 일(?)을 해냈다. 시를 쓰지않기 위해 매듭·피아노 등에 심취해 보기도 했으나 그를 연소시키는 작업은 오로지 시밖에 없었다고.

자신의 띠동물인 뱀에 대한 분석도 날카롭다. “뱀은 살아있는 경계이고, 틈새고, 움직이는 금기”란다. 큰딸도 뱀띠여서 집안에 떼뱀이 산다는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할 때 “뱀은 허물을 벗고 가버렸는데 허물보고 비평을 한다”고 비웃는다. 또 그의 시가 추잡하다는 이들에겐 “감춘 게 드러낸 것보다 못하지 않냐”고 말한다.

‘시의 혓바닥도 뱀 혓바닥/ 안과 밖을, 죽음과 삶을, 존재와 부재를 한 입에 담으려는/ 혓바닥이 둘로 갈라질 수 밖에 없는’. 뱀과 시를 비유한 시에다 “예술은 정당화가 필요없고, 구실이 필요없고, 해명이 필요없는 것…”이라고 내뱉어놓곤 그는 그것이 또 부질없단다.

남녀공학인 곤양고에서 그의 존재는 단지 교사일 뿐이다. 그가 시집을 내도, 중앙지에 대서특필돼도 시침을 뚝 떼고 있는데다가 시에 대해 선뜻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어 그도 다른 이들도 서로 모른 체하고 지낸다고. 올해 계획이 뭐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도 헤아릴 수가 없다. “아무일도 안하고 싶어요. 먹고 자고 글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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