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들여다볼 때 시선이 가슴 깨를 향하면 아쉬운 마음이 고개를 든다. 오래 전 젖먹이 아이가 거쳐간 내 몸에는 여자가 아닌 엄마로만 살았던 한때가 새겨져 있다. 아이가 ‘무공해’의 양식을 얻는 대가로 돌이킬 수 없는 변형을 입은 몸에 눈길이 가노라면 아쉬움을 넘어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몸에 남긴 기억만 유쾌하게 떠올릴 수 있는 건 아니다.

모유 수유에 대한 딴죽

수유기간 동안 젖먹이를 떼어놓고 외출하는 건 잠깐이라도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몸에서 저절로 분비되는 유즙 때문에 곤란한 일을 겪을 뻔하기도 했다. 젖을 먹이는 여자는, 어미 캥거루처럼 싫든 좋든 아이와 한 몸으로 살아야 하는 처지라는 것을 절감해야 했다. 젖을 뗄 때도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모른다. 아이에게 엄마젖을 물리는 일은 수시로 가루우유를 물에 개어 먹이는 노동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사고가 어떻게 가능한지 나는 알 수 없다. 첨단의 기술문명을 누리는 시대에도 가임 여성들은 출산, 육아와 관련한 일에서 완고하고도 집요하게 전통적인 방식을 강요당하고 있다. 소젖이 아닌 엄마젖으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미의 도리라는 건, 한국 사회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요지부동의 진리처럼 굳어져 있다. 이러한 믿음은, 자신의 체형을 걱정하느라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는 여성을 이기적이거나 모성이 결핍된 사람인 양 매도하는 태도에 길을 열어놓는다. 육아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강조는 분만에도 옮아가 오래된 분만법 중 하나인 수중분만이 유행을 탄 적도 있다.

수유에서 보듯 전래의 출산·육아 방식이 엄마에게 불편한 바가 적지 않음에도 왜 그런 점은 감추어지는 걸까. 여성의 몸은 인공이 가해지는 것보다 자연적인 방식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그럴싸한 사고가 먹혀들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성의 몸을 생각해주는 사고라고 본다면 단단한 착각이다. 여성을 자연에 빗대는 건 매우 고전적이고 낯익은 사고방식에 속한다. 발전보다는 정체, 적극성보다는 수동성,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것 등과 연관된 자연은, 여성적인 것과 잘 어울린다고 인식되고 있다. 자연이 여성이라면 문명은 남성이다. 도시화나 문명, 개발 등이 남자들의 몫이라면 여자들의 몸만큼은 문명화되거나 개척되지 않은 자연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즉 고래로부터 여성에게 주어진 전통적 역할을 순순히 따라달라는 요구가, 여성을 자연과 겹쳐놓는 이들의 사고에 깔려 있다.

출산 육아에 매어둔 여성의 몸

전래적 성별 분업 체계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가족 안에서 엄마나 아내로 머물러 있는 것밖에는 없다. 이런 체계에서 직장에 나가는 여성은 자연의 섭리를 버리고 남자의 영역에 끼어든 ‘반자연’으로 취급될 뿐이다.

이쯤 되면 모유 수유를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정작 집밖에서, 일터에서 젖을 먹일 공간 하나 마련해줄 생각을 하지 않는 사회의 속내가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여성들에게 전통적인 방식으로 아이를 낳고 기르라고 떠드는 목소리에는 여성을 남자들과 동등하게 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집에서 아내와 엄마로만 머물러 있는 존재로 못박아두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여성의 정체성을 가정주부에 붙들어두는 사회라면 직장을 나가는 여성들이 그 존재감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여성노동자의 70%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40% 가량이 여성인 나라라도 비정규직 여성 문제는 아무렇게나 처리돼도 뒤탈이 일어나지 않는다. 생리유급휴가는 증발했고 임신과 출산은 계약해지로 치닫는다. 아이 낳는 일은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주변부 노동력이 될 기회마저 빼앗는 셈이다. 노사정 회의에서도 여성을 대변할 사람은 없으며, 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여성부는 ‘건강한’ 가족이나 소수의 여성고급인력의 육성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여성의 몸을 가사노동과 출산, 육아에 매어 두는 데 열심인 것은 세속의 가부장 권력을 대변하는 종교에서 더욱 철저하게 관철된다. 가톨릭은 나치 유겐트 출신으로 낙태와 동성애는 물론이고 피임까지 반대하는 사람을 그들의 ‘아버지’로 뽑았다. 여성의 몸이 애 낳는 기계에서 독립적인 시민이 되기 위한 싸움,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문학평론가 정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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