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의 한 동네에서 있었던 일이다. 수십년간 한자리에 있던 횡단보도의 위치가 교통체증을 이유로 약 70m 앞쪽으로 옮겨졌다. 이 바람에 동네 시장의 상권이 위축됐다며 주민들이 민원을 냈다.

넘쳐나는 '민원성' 제보들

만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신문사의 사회부장이라면, 신문지면에 이 일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혹 당신이 서울지역 일간지(소위 중앙지)의 사회부장이라면 아예 기사로 취급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부산 일간지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경남도민일보는 이런 기사를 키운다. 주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중요한 기사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민들이 이러 저러한 이유로 민원을 냈다’는 식으로만 기사를 작성하면 그야말로 ‘단신’ 취급밖에 받지 못한다. 그래서 부장은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서라면 주민의 생존권은 좀 무시되어도 좋은가' 라는 관점에서 기사를 써보라고 일선 기자에게 주문한다. 비록 마산의 한 동네에서 일어난 작은 일에 불과하지만, 경남도내, 나아가 전국 어느 지역에서도 이미 있었거나 앞으로 있을 법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다른 동네에 사는 독자들의 관심까지 붙들기 위한 기사작성의 수법이다.

거기에다 실제 횡단보도 이전으로 인한 상인들의 매출감소 실태는 어느 정도인지, 그로 인해 문을 닫은 가게는 없는지, 실제 교통체증 해소 효과는 어느 정도인지, 민원을 받은 경찰서의 입장은 뭔지, 교통전문가들의 견해는 어떠한지에 대해서도 폭넓게 취재해 기사에 담는다. 그리고 옛 횡단보도가 있던 자리와 지금의 횡단보도가 한눈에 보이는 사진을 잡기 위해 주변의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촬영을 한다. 화상(畵像) 담당자는 이 사진에 포토숍을 이용, 옛 횡단보도 자리를 그려 넣는다.

4월 5일자 ‘마산 자유무역지역 후문 앞 횡단보도 이전, 교통 ‘파란불’ 상권 ‘빨간불’’이라는 4면 머리기사는 이렇게 하여 나온 것이었다. 이 보도 이후 해당기관은 교통체증 해소라는 목적 외에 상인들의 생존권도 무시되어서는 안된다는 ‘주민밀착형 사고’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주민들의 횡단보도 추가설치운동 또한 탄력이 붙어 집회와 서명운동으로 이어졌다.

4월 22일 마산동부경찰서 교통규제심의위원회는 마침내 “양덕재래시장 입구 주변에 횡단보도를 추가로 설치한다”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주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동네 횡단보도 하나 설치하는 게 뭔 대수라고 일간지 사회면에 톱으로 쓰고, 그것도 모자라 칼럼으로 자랑까지 하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땐 이런 민원이 발생하면 도내 다른 지역의 비슷한 사례를 찾기 위해 행정기관에 접수된 민원 접수철을 뒤졌다. 머리기사쯤 되려면, 적어도 서너건의 같은 사례를 나열하고, 수십~수백건의 통계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주민들 가려움 긁어주는 보도

그러나 경남도민일보는 그야말로 ‘동네신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지역신문을 공부하고 돌아온 한 언론학자는 ‘지역신문이야말로 지역사회의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결사 역할’을 좀 더 전문용어로 말하면 ‘공공저널리즘(Public Journalism)’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역사회의 현안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에서 단지 전달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창한 주제나 거대한 사업 뿐 아니라 앞의 예처럼 동네의 작은 일에도 개입하여 해결까지 추구함으로써 주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게 지역신문의 올바른 역할이며, 가장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소재라는 것이다.

이런 지역밀착형 기사의 경쟁력은 인터넷 조회수로도 쉽게 입증된다. 2001년 9·11 세계무역센터 폭파테러사건이나 최근의 교황 선종과 같은 세계적인 빅뉴스의 조회수는 100회를 채 넘지 못했다. 그런 뉴스가 생긴 날은 사이트 방문자수도 오히려 감소한다. 반면 반송1단지 재건축 아파트 관련기사나 동네 식당을 소개하는 기사는 매번 수천회를 기록한다. 물론 지난달 20일 경남을 흔든 지진 관련기사도 모두 조회수가 높았다. 근접성 때문이다.

창간 때부터 추구해온 경남도민일보의 지역밀착형 편집방향 덕분인지 편집국에는 개인의 작은 불편이나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성 제보가 넘쳐난다. 이런 제보만 확인하는 일에도 취재인력과 지면이 모자랄 지경이다. 과거 다른 신문사에서 일할 땐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이게 바로 ‘사회적 소유구조’를 갖춘 지역언론에서 일하는 즐거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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