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문화사 도서출판 작가마을 260쪽

訪古伽倻草色春

(옛 가야 찾아오니 풀빛 푸른 봄이다.)

興亡幾變海爲塵

(흥망이 몇 번 변해 바다가 진토되었나.)

自是心淸如水人

(당시에 애끊으며 시 남긴 객은,)

當時斷腹留詩客

(본래부터 깨끗한 맘이 물같은 사람이었네.)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가락국의 모습을 애잔히 바라보며 읊은 시다. 가락국 500년 도읍을 예찬하고 술회하는 옛 선비들의 노래는 이 외에도 즐비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이 우리 역사인 고구려를 대한민국의 고대국가가 아니라 중국의 소국이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역사 왜곡의 망언을 해 한반도가 뜨거웠다.

가야국 역시 2000여 년 전 역사기 초기에 한반도 남부지역에 최초의 왕조국가로 도읍했으나 안타깝게도 그 역사와 문화가 왜곡되고 날조돼왔다.

그러나 옛 선비들이 지어 <동국여지승람>과 <김해읍지>에 실려 전해지는 가야의 노래들은 가야사를 신비와 왜곡 등 온갖 이유

로 해석하고 있는 사서(史書)의 기록에서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가야문화의 발견이다.

사실 가야사는 국가의 외형에 비해 패망한 국가의 한계 때문인지 역사적 사료들이 대부분 소멸되고 올바른 평가를 못받아 왔다. 더구나 6가야, 7가야 등 요즘처럼 분권화가 잘 된 고대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개별 왕조를 가졌다는 점에서 소국(小國)으로 평가받는 등 한국역사에 있어 오류가 많음을 전문가들로부터 지적받아왔다. 가야사에 대한 사료가 그만큼 없다는 것이다.

고향 김해 문화지킴이 김종간 교수

고려 충렬왕대의 승려 보각국사 일연이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 등 4국의 유사를 모아서 간추려 편찬한 <삼국유사>는 가락국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일연스님은 가락국기를 실으면서 “고려 문종 대강 연간(1076년)에 금관지주사인 문인이 찬(撰)한 것을 간추려 싣는다”고 적었다. 가락국기는 민족사에 큰 족적을 남긴 가야국의 실존과 독창적이고 우수한 문화를 담고 있는 소중한 문헌이다.

<삼국사기>에는 가야에 대한 기록이 미미하지만 몇 줄의 관계 문헌은 가야의 실존과 정치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지리편에 보면 “김해 소경(小京)은 옛날 금관국인데 그 나라 시조 수로왕으로부터 10대 되는 구해왕 때에 이르러 양 나라 중대통 4년 신라 법흥왕 19년에 백성들을 거느리고 항복하여 그 지역을 금관군으로 만들었으며”라는 내용이 나온다.

<경상도 지리지>에는 “가락국 수로왕전에 말한다. 천지가 개벽한 후 이 곳에는 아직 나라도 없고, 군신도 또한 없었다.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방(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 등 9간이 있어 추장이 되어 백성 무릇 7만5000여 집을 거느렸다”고 기록돼 있다.

   
500여년 간 철기·토기문화 꽃피운 총체적 가야문화 역사자료집 펴내


<세종실록 지리지>도 “김해도호부는 본시 가락국이다. 후한의 광무황제 건무18년 임인(42)에 가락의 수장인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등 9인이 백성을 거느리고 계음을 하다가 구지봉을 바라보니 이상한 소리와 기색이 있으므로 가본즉 금함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데 그 속에 황금빛이 나는 해와 같이 둥근 알이 있었다”고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탄생설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외국 문헌에서도 가야사의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삼국지>에는 “韓에는 세 종족이 있다. 하나는 馬韓, 둘째는 辰韓, 셋째는 弁韓이며, 辰韓은 옛 辰國이다. 馬韓은 서쪽에 위치하였다. 그 백성은 토착생활을 하고 곡식을 심으며 누에치기와 뽕나무 꿀 줄을 알고 면포(綿布)를 만들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삼국사기보다 앞서 편찬된 일본의 <일본서기>에도 “21년(527) 여름 6월 갑오 초하루 近江毛野臣이 군사 6만을 이끌고 임나(任那)에 가서 신라에게 멸망당한 남가야(김해의 본가야)를 다시 세워 임나에 합치고자 했다”고 일본의 시각에서 가야를 조명한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향토사학자이며 가야대학교 외래교수인 김종간 김해향토문화연구소 소장이 펴낸 이 책은 500여 년간 철기와 토기문화를 발달시켜 온 가야문화에 대한 총체적인 역사사료집이다.

김해 출신인 김교수는 20년 전인 1985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가야문화운동을 제창했으며, 줄곧 고향에서 김해의 문화지킴이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김교수는 서문에서 “가야의 본고장 김해시가 세계적 문화도시로 거듭나고 가야대학교가 가야문화사란 강좌를 개설한 것은 가야사복원이 멀지않음을 의미한다”며 “歷史는 力史가 될 수 없고 力事化되어서도 안된다”고 잘라 말하고 있다. 도서출판 작가마을. 260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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