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는 안나오는 뉴스]시민사회부 김성찬 기자

유엔이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로 지정하고 전두환 정권이 이를 활용하면서 시작돼 올해로 25 회째를 맞는 장애인의 날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나 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 밖에 보지 않는 편협한 시선이 주류인 시대에 노들장애인야간학교 대표이자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인 박경석씨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를 고사하며 지난 2004년 3월 1일 총선을 앞두고 쓴 글이 인터넷에 올라 ‘진보적 장애인 운동’의 절박함과 당연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김규항씨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박경석씨의 글을 올린 블로그 화면.
다음은 박씨의 글 중 일부.

‘안녕하십니까 저는 박경석입니다. …… 수많은 동지들이 저를 민주노동당 장애인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해 주신 점은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민망할 따름입니다. …… 그러나 감히 드리고 싶은 말씀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하나의 소중한 희망이듯 장애인들이 거리에서 투쟁하는 현장을 강화하고 진보적 장애운동을 힘차게 전개해 나갈 조직건설의 활동가로 남는 것 또한 동등한 무게의 희망이라 생각합니다. ……

진보적 장애운동은 여전히 척박하고 열악한 상황입니다. 때문에 이 땅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는 장애민중들은 한낱 부르주아 보수 정치인들의 정치적 치장물로 전락하였습니다. …… 그것은 장애민중이 투쟁으로 조직을 건설하지 않았기에 나타나는 장애운동의 열악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의 문제는 더욱 왜곡되어 온 것입니다. …… 이 사회에서 장애인은 차별의 한가운데 살아왔습니다. 방구석의 폐기물로 살아왔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본의 질서에서 가장 억압받고 고통받는 계층으로 살아왔지만 우리의 투쟁은 <사랑의 리퀘스트>류의 자선공연이거나 오히려 하나의 퍼포먼스로 여겨질 뿐이었습니다. …… 그래서 그런지 장애인의 삶을 옭아매고 있는 쇠사슬은 하나의 퍼포먼스요 동정으로 다가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저와 그리고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에게는 하나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자본의 사회를 변혁시킬 저항이었습니다. ……

장애운동은 더 이상 열악함으로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장애인이 받아왔던 차별의 무게만큼 더 질기게 혁명적으로 장애인을 소외시키고 자본과 비장애인의 중심으로 계획되고 운영되는 세상을 바꾸어 갈 것입니다. …… 장애인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이 글을 자신의 블로그(http://gyuhang.net/archives/2004/03/08@08:21PM.html )에 올린 문화평론가 김규항씨는 그를 장애인 문제를 자본주의 체제와 계급의 맥락에서 보는 사람이지만 털끝만큼도 관념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정부에서 ‘장애인의 날’이라고 부르는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에 행할 그의 투쟁방식을 혹자는 과격하다고 하지만 장애인 활동가들이 사슬과 사다리로 제 몸을 묶고 도로를 막는 일은 노동자들의 ‘파업’과 같다고 항변한다. 그들이 단지 허가된 공간에서 구호를 외치고 성명서를 낭독한다면 아무도 ‘병신들의 소란’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란 것이 그 이유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9일 장애인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장애인 차별 금지법’을 올해 안으로 제정하기로 하고 또한 장애인들의 이동 편의를 도와주기 위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도 마련하기로 했다.

장애인 단체들은 이번 정부의 결정으로 큰 산 하나를 넘은 셈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고 가파르다.

어차피 돌아온 장애인의 날. 국민의 90%인 비장애인들은 적어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조금 불편한 몸을 갖고 있을 따름인 주변 이웃들의 고충을 생각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