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지 않는 꽃이 좋아 꽃만 그려요"

“내가 적극적으로 살아야 세상이 밝아진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 말은 뇌병변장애 1급으로 자유스러운 몸이 아니지만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필화가 박성미(여∙26)씨가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에서부터 옷도 혼자서 입을 수 없으니 세상이 얼마나 미웠겠는가. 그런 그가 그림에 재미를 붙이고 자신보다 더한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적극적인 사람으로 거듭났다. 이야길 하면서도 성미 씨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고2때 장애인 문화예술제 출전 '본격시작'

창원 풀잎마을(옛 홍익재활원)이 집인 성미 씨는 의령에 있는 은광학교를 다니면서 그림을 시작했다. 그때가 중 2년, 열일곱. 미술수업을 처음하면서 물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는 그가 접한 그림 그리기는 새로운 세상으로 연결해주는 통로였다. “선생님이 그림 그리라고 했을 때 무슨 말인지도 못 알아들었는데 입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이런 재미도 있구나 싶었어요.”

입에 붓을 물고 물감을 찍어서 그림 그리는 과정은 몸살을 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고교 2학년 때 전국장애인 문화예술제에 나가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단다. 신문을 통해서 발이나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싶었다는 그는 정작 대회에서는 자기 그림 그리기 바빠서 그런 사람들을 눈여겨 볼 겨를도 없었다고 전했다.

성미 씨의 화폭에는 꽃이 피어있다. 화실에 걸린 그림들도 모두 꽃 그림. 티셔츠에 아크릴 물감으로 꽃 그림을 그려 선물할 정도 꽃을 좋아하는 성미 씨. 꽃만 그리게 된 이유를 묻자 그는 “첫 미술시간에 꽃병을 보고 그리는 정물화였는데 그때부터 꽃만 그렸다”고 말했다. 금방 시들어버리는 꽃의 아름다움을 계속 볼 수 있어서 좋단다.

그림을 그리면서 꽃의 종류도 많이 알게 됐는데 그 중에서도 해바라기, 제비꽃, 국화과의 해바라기와 비슷한 원추천인국이 그가 좋아하는 꽃이다.

수채화에서 2년 전부터 아크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유화도 그릴 계획이다. 은광학교 다닐 때 인연이 된 한문주 선생님이 지난해 서울로 발령이 나기 전까지 그를 지도해왔다. 그 뒤를 이어 지난달부터 박두리 화가가 매주 그를 찾아와 지도하고 있다.

또 꽃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작가가 매년 꽃구경을 시켜준단다. “한문주 선생님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하루 5~6시간 작업..."개인전 여는 게 꿈"

성미 씨의 하루는 오전에 인터넷 그림 동호회나 그의 미니홈페이지를 탐독하는 일로 시작해 오후에 5~6시간 씩 그림작업으로 끝난다. 지난 3월에는 ‘그림을 배우자(cafe.daum.net/artdh)’라는 인터넷 동호의 서울 전시회에 구족화가로서는 유일하게 그의 그림이 걸리기도 했다. “아직 부족해서 배울 게 많다”는 그는 개인전시회를 여는 게 꿈이다. 똑 같은 그림보다는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추구하고 싶단다. 시도 종종 쓴다는 그는 앞으로 시화전도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색깔, 구도가 좋다는 평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는 그는 밝은 원색의 그림이 많다. 그의 성격이 그림에 녹아든 게다. 지난해 여름엔 50호 짜리 그림을 그리면서 한 달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생했단다.

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이지 못하니 물감 짤 때나 색깔 섞을 때가 가장 힘들단다. 당연히 짜증도 날 법 한데 어떻게 푸는지 물었다. “음악을 크게 틀어요. 몸이 이러니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책도 읽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져요.” 그는 베스트 드라이브. 5년 전부터 타기 시작한 전동휠체어는 항상 도움을 받아야 이동을 할 수 있는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래도 손만이라도 맘처럼 움직일 수 있다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텐데 라는 생각이 간절하다.

보육원에서 풀잎마을로 왔을 때가 다섯 살. 부모님의 배웅을 받는 친구들과 학교를 다니면서 원망도 많이 했단다. “왜 낳았을까 싶기도 했다. 지금은 잘 살아 왔듯이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형태만 다를 뿐이지 사람은 다 똑 같아요. 안경 쓴 사람도 있고 안 쓴 사람이 있잖아요. 장애인도 감정도 있고 똑 같은 사람입니다.”

전업작가나 마찬가지인 성미 씨는 4년 전 풀잎마을에서 재활병원 한 쪽에 마련해준 화실도 갖고 있다. 입구에 ‘박성미 화실’이란 문패도 달렸다. 화실이 생겼을 때 기분이 좋았을 것 같다고 하니 ‘민망하다’며 쑥스러워 했다. “다른 사람들은 개인 공간이 없는데 미안하면서도 그 만큼 노력해야 한다고 항상 다짐합니다.” 친구들 잘 사귀고 털털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하늘색. 답답할 땐 하늘을 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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