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회지서 하루종일 다녀도 흙 밟을 일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지금부터 좋게는 30년은 됐다. 그 당시 기준으로는 보면 그것은 분명히 자랑거리였다. 돌과 흙이 반쯤 뒤섞인 길에는 먼지가 풀풀 날리고 비가 오면 흙탕물이 튀었다. 버스를 타면 가는 내내 덜커덩거렸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길 복판에는 들풀들이 밟히고 밟혀도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갔다. 마당 구석에도 어김없이 풀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비가 오고 나면 마당에는 지렁이가 슬슬 기어다니고 두꺼비가 어기적어기적 기어들어 왔다. 그래도 그 시절 사람들은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흙을 밟아야 할 산책로

언제부터인가 도로에 아스팔트가 깔리면서 먼지도 날리지 않게 되고 차를 타도 덜커덩거리지 않게 되었다. 비가 와도 흙탕물이 튀지 않았다. 차로 한시간이 넘게 걸리던 거리도 20분이면 충분하게 되었다. 발에 채이던 돌멩이도 발에 걸리던 풀도 없어졌다. 이 엄청난 변화는 사람들에겐 분명히 새로운 세계였다. 그 편리함에 돌담도 흙담도 흙길도 시멘트로 바뀌어 나갔다.

한때 도회지 사람들이 시골에 다니러 오면 울퉁불퉁한 도로가 불편하다며 도시는 하루종일 흙 밟을 일이 없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했다. 시골사람들은 은근히 그 생활을 부러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시골학교에 온 선생님들도 수업시간에 짬을 내 학생들에게 도시에서는 흙을 밟을 일도 없고 흙 구하기도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종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은 어떤가? 도회지는 거대한 시멘트 덩어리가 된지 오래고 농촌 마을도 마구잡이로 시멘트를 갖다발라 빠끔한 틈이 없다. 이제는 농촌에서도 흙 밟는 시간보다 시멘트 밟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벽돌로 담을 쌓고 집을 짓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냥 놓아둬도 될 마당까지 시멘트로 덮어 버렸다. 한마디로 시골의 골목도 집도 길도 시멘트로 채워 도시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이제는 농촌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런데도 반 생태적인 일들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자동차가 다니는 신작로만 포장을 했으면 더 없이 좋았을 것을 이제는 농로까지 모두 포장을 해버렸다. 아무리 깊은 산중이라도 사람이 다니는 곳은 길을 넓히고, 길이 나면 시멘트를 갖다바르기 바쁘다.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일년내내 등산객만 다니는 산길에도 깊숙이 포장을 해 놓았다. 명승지도 마찬가지다. 이쯤에서 시멘트 포장길이 끝이 났으면 좋았을 텐데 더 이어지는 말이다. 한마디로 안해도 될 포장길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길을 매끈하게 닦아 놓으니 안들어 올 차가 들어오면서 불빛과 소음으로 인한 생태계 혼란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빠끔한 틈이 없다

풀섶에서 무엇이 궁금한지 동그란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번쩍 들고 있는 개구리, 귀를 쫑긋 세운 산토끼, 총총 걸음으로 달아나는 장끼,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다니는 족제비… 시골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은 도로 위에서 놀던 개구리 한 마리는 물론 풀벌레 한 마리도 다치는 일이 없었다. 비포장 도로라 차를 천천히 몰았기 때문에 미리 위험을 감지하고 충분히 피할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로가 포장되고 난 후 길에는 죽은 뭇 생명들의 사체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빠르게 질주하는 차량 앞에 미처 피할 틈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치이고 만 것이다. 일년에 도로상에서 억울하게 희생되는 들짐승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 또한 무분별한 시멘트 문화의 피해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점을 보더라도 산길 포장은 최소화 해야 한다.

문제는 입으로는 웰빙을 외치면서 손으로는 반 생명적인 환경을 서슴지않는 인간들의 이기심의 끝이 없다는데 있다. 삶에 편리하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지금도 곳곳에서 시멘트를 덮고 있다. 시멘트의 무분별한 남용은 결국은 땅을 죽이고 지구상의 많은 생명을 죽이게 된다. 땅이 숨을 쉬지 못하면 그 땅위에 사는 인간인들 무사할 수 없다.

현대사회의 특성상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흙을 밟아야 할 산책로에 시멘트로 포장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번 덮어 씌워진 시멘트에는 수십 년 동안 풀 한 포기도 자랄 수 없다. 그 후유증으로 뭇 생명들과 다음 세대들이 고통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땅이 건강해야 우리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산만이라도 시멘트에서 해방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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