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비정규직 노동자’에 관한 법률들에 대해 급제동을 걸고 나섰다.

인권위는 노동인권보호와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기에 정부의 법안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의견을 표명하여 법안의 국회통과를 관철하기 위해 물밑으로 온갖 작업을 해온 정부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정부 내 주무부처인 노동부가 인권위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초점은 고용 규제 여부

노동부의 반발 가운데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대목은 노동경제학자 출신인 김대환 노동부장관이 인권위의 이런 의견표명을 비전문가들의 지나친 월권행위일 뿐만 아니라 원래 ‘잘 모르면 용감’하지 않은가라는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노동부 장관의 감정적 표현은 뭣도 모르는 것들이 감내라 배내라 한다는 우리네 속담을 언뜻 떠올리게는 하지만, 지금의 노동시장이 과연 정상인지 혹은 비정상인지 조차 혼돈스럽게 만들 뿐이다.

왜냐하면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1996년 57:43이었던 것이 2002년에 이르러 44:56으로 완전히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마치 정상으로 내비쳐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준비해온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두고 재계와 노동계가 논쟁을 벌이는 초점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가 아니라 임시직과 계약직을 포괄하는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에 대한 규제여부라는 점에서 과연 노동부장관이 말하는 전문성의 실체를 한번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기간제 노동자들이 급증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2001년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에서 183만명이 기간제 노동자들이었으나 올해 4월 현재 약 400만명이 기간제로 고용되어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바로 이런 기간제 노동자들의 폭증현상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노동부는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현행 1년 계약에서 3년으로 증가시키면서 횟수를 제한하겠다는 의도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준비하여 왔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우리나라 기간제 노동자는 현재 790만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들이 종사하는 업무는 ‘일시적인 업무’가 아닌 ‘상시적이고 영속적인 업무’라는 점에서 이미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급여 또한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 수준일 뿐만 아니라 4대 보험 가입률도 30%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게다가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더라도 기존의 고용불안을 완화할 장치가 여전히 전무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3년 이내에 계약해지하거나 다른 임시직으로 교체하더라도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지금과 같은 희한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이 둘의 팽팽한 주장을 살펴보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 있다. 왜냐하면 기간제 노동자의 수에서 보이는 불일치는 고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본질이 은폐되는 감이 들기 때문이다. 즉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동일노동에 차별대우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일노동 차별대우가 문제

바로 이 문제를 인권위는 시정하라고 지적하였을 뿐이다. 똑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누구는 따뜻한 밥 주고 누구는 찬밥 주는 게 사람의 인정상으로도 용납되기 어려운데, 하물며 법으로 모른척하자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말이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을 둘러싸고 사유가 분명하게 명시되어야 한다는 인권위의 주장은 우리사회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를 우선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신사적인 충고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잖은 충고마저 무식의 소치로 돌리는 노동부장관은 과연 얼마나 유식한 존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과 설움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아니 현실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주제에 현실을 관장하는 관료로 나선 어중간한 책상물림은 아닌지 말이다.

옛말에 제자가 아무리 죽을죄를 지더라도 스승은 제자의 편이어야 한다고 했지만, 제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비판한다고 학교 다닐 때 공부 제대로 하지 않은 것들이라는 막말까지 해대는 노동부장관의 그 잘난 유식함에 고개가 절로 돌려질 뿐이다.

/이종래(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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