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진 연희단 거리패 배우장 “21세기 새로운 연극, 기대하세요”

“자네 참 이발 오래 하는 구만.” “각하도 참 오래 하십니다.” 지난해 관객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효자동 이발사>의 성한모(송강호 분)와 박정희 대통령의 대사다.

조영진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박 대통령을 연기한 배우는 한국 연극계의 대표적인 극단이 된 연희단 거리패(대표 정동숙, 예술감독 이윤택)의 배우장 조영진(43)이다. 이 영화 이후 다양한 조연급 영화 섭외제의로 제법 뜰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고 그가 선택한 건 연극 <농업소녀>(원작 노다 히데키, 번안·연출 이병훈).

21세기 새로운 연극의 대응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겠다는 다부진 각오로 이 작품에 임했다는 그. 작품이 올려지고 있는 서울대학로 게릴라 극장에서 지난 16일 저녁 공연 후 그를 만났다.

최근 대학로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농업소녀>에 대한 얘기, 40대 중반에 접어들어 배우로서 새로운 실험을 감행하는 그의 오늘을 엿보았다.

-작품이 상당히 난해하다.

△그렇다. 백미(白米)라는 농촌소녀가 서울로 가출을 해 도시인들에게 이용당하고, 다시 농촌으로 내려와 쌀 농사를 짓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얘기만 들을 수 없다. 그 과정 속에 군국주의와 대중의 영합에 대한 경고, 디지털 시대라도 잊히면 안 되는 것조차 쉽게 잊는 대중들에 대한 경고 등이 압축돼 있다.

단지 의자 두 개와 무대 중앙 테이프 두 개로 표현된 철도레일이 전부인 무대도 그렇다. 총 26장으로 구성돼 연극으로는 비교적 많은 장면전환에다 다양한 인물들이 단지 배우 4명의 신체로만 표현된다. 연극 양식적으로도 관객들에게 다소 어렵게 다가갈 것이다.

-캐스팅과 연습과정은 어떻게 이뤄졌나.

신체연기로만 18개 배역 소화

△현 국립극단 예술감독이자 우리 극단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이윤택 연출가가 동료이자 친구인 이병훈 연출가에게 ‘당신은 작업을, 우리 극단 고참배우에겐 변화를’ 요구하며 함께 작품을 하기를 권했다.

이를 받아들여 지난해 초에 코미디극 하나를 하려했는데, 너무 시간이 빠듯해 이 작품을 선택했다. 정동숙(도범의 여비서 역)과 나(이강토 역)는 지난해 2월초부터 계속 연습을 해왔고, 김경익(도범 역)은 영화 <남극일기> 촬영으로 중간에 빠졌다. 주인공인 백미 캐스팅에도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고. 그러다 올 들어 경익이도 영화촬영이 끝나고, 2월초 극단 유 단원인 박유밀을 백미 역으로 캐스팅해 두 달 동안 하루 최소 10시간이 넘는 연습을 했다.

-공연 전에 ‘연기자로서 새로운 실험이다’라고 얘기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2003년 극단의 한 젊은 연출가와 함께 작업을 했는데, 그 때 관객들이 빠른 패턴의 연기와 다소 시끌벅적하게 노는 것에 열광하는 거였다. 그걸 보고 ‘연기자로 살아남으려면 내 연기스타일에도 다소 변화를 줘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실험적 연극 <농업소녀> 선택

한 작품 내 무대는 거의 없고 신체연기로만 18개 배역이 왔다갔다하는 이 작품은 안성맞춤이었다. 이전에는 숨을 깊게 잡아 연기자로서 주체적으로 역할을 장악했다. 하지만 이번 연기는 이병훈 연출가도 말했듯 몸을 바꿔 관객들에게 장면전환,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준다.

아무리 내 의식이 바뀌어도 객관적으로 만들어진 몸으로 그 변화를 관객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면 그건 실패한 것이다. 이게 정말 어렵다.

-1시간 40분 동안 4명의 연기자 모두가 웬만한 모노드라마보다 더 많이 움직였다. 출연진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데,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솔직히 이런 작품을 평일 4일 1회, 주말 2회 씩 공연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2월 전에 꾸준히 하루 1시간씩 뛰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하체를 단련해 왔다. 지난 1일 공연에 들어가서는 요가, 스트레칭 등을 통해 호흡을 깊게 하려한다. 나이가 있다보니 공연마치고 술은 거의 마시지 않고, 간혹 후배가 건네는 비타민을 자주 복용하는 정도다.

-극단의 상임예술감독인 이윤택 연출가와 이번 작품을 함께한 이병훈 연출가의 차이를 비교해본다면.

△두 사람 모두 현재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연출가들이다. 그만큼 각자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윤택 연출가는 순간에 철저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마치 죽음 앞에 사람이 섰을 때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쏟길 요구한다. 그리고 막히면 끝까지 밀어붙여 그 상황을 뚫는다.

반면 이병훈 연출가는 직관보다는 철저히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연출을 선호한다. 배우가 움직인다면 ‘왜 움직이는 지’, 그 이유가 설명이 안되면 엄청난 자료를 보면서 끝까지 해결한다. 연기 도중 막히면 왜 막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꼼꼼히 따져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연기자에게 많은 시간을 요구하고 그만큼 작품의 완성시간이 많이 결린다.

5월 19일 부산·7월 밀양 공연

-향후 계획이 있다면.

△우선 <농업소녀>가 잘 되면 좋겠다. 오는 29일 서울 공연을 마치고, 다음달 중순부터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장기 공연한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이젠 극단의 배우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극단살림에 다소 도움이 되는 이었으면 한다.

지금 수원과학대에 출강을 하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대학에서 실기교육 전문 강사가 돼 제대로 된 실기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기도 하다. 물론 나는 죽을 때까지 연극배우는 천직이라 생각한다.

연극 <농업소녀>는….

전농이 정부의 농업개방에 대한 이면합의를 규탄하며 18일부터 ‘농민총파업’투쟁에 나섰다. <농업소녀>는 연희단 거리패의 이론적 산실인 우리극연구소(소장 이병훈)의 21세기 연극동시대 연극전 1탄으로 마련돼, 최근 한국 농업의 위기를 근원적으로 판단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원작은 일본 연극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연출가 겸 극작가인 노다 히데키가 2000년 일본에서 초연했다. 당시 일본 사회적 전체적으로 큰 이슈를 불러 일으켰다. 소중하지만 잊히는 ‘농업’의 소중함과 도시 대중들의 새로움에 대한 갈망이 가진 위험성을 지적한 원작을 도쿄라는 배경에서 서울로 옮겨놓았다. 원작을 특별한 수정 없이 직역한 작품이지만 높은 경제력에 비해 취약한 일본 농업과 우리 농업의 유사한 상황 때문인지 한국 관객에게도 꽤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작품은 농업소녀 백미가 서울로 가출하며 겪는 얘기가 주를 이룬다. 백미는 서울에서 대학교수와의 원조교제, 도시의 범죄를 뜻하는 도범과 도범의 비서를 통해 자신의 순수를 돈과 권력을 쥐는 과정으로 소비한다. 결국 ‘똥냄새를 없애는 쌀농사’를 통해 도시와 소통하겠다는 마지막 희망조차 버린다. 도시농업 모임이 웰빙 도시당이 되고, 음란한 망상이 아름다운 꿈으로 바뀌는 대도시 서울의 모순이 도범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강토(조영진 분)의 마지막 대사 ‘이것은 … 시골이 도시를 짝사랑한 얘기다. 서울에는 이젠 시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를 통해 농촌이 현재 처한 상황과 도시민들의 무관심을 파헤치고 있다.

<농업소녀>는 양식적으로도 26개 장면을 4명의 배우가 테이프와 의자 2개로 표시된 철길 세트 하나만으로 극을 끌어가는 ‘가난한 연극’을 내세우고 있다. 배우들은 호흡과 움직임, 소리라는 연극적 요소만으로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1인 18역 이상을 해낸다. 정동숙의 코믹한 연기 뿐만 아니라 조영진·김경익 등 한번 이상 주요 국내 연극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연희단 거리패의 대표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력도 볼 만하다.

11년 만에 소극장 연극을 선보이는 이병훈 연출가는 “<농업소녀>는 도회적 문화가 보여주는 야만성에 대한 엄중한 연극적 경고이자 천박한 자본주의 풍토를 향한 우리극연구소가 펼치는 게릴라전의 시작”이라고 작품의 의미를 부여했다.

오는 29일까지 서울 게릴라 극장 공연을 마치고,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다음달 19일부터 6월 16일까지 공연된다. 올 7월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서도 이 작품을 볼 수 있다. (02)763-1268, (055)355-2308.

/이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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