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꾸민 글 왜 합니까” “선생님과 유일한 소통 길”

“일기검사를 하다 보니 자기가 하는 진짜 생각은 적지 않고 검사를 받기 위해 억지로 꾸며 쓰게 됩니다. 또 일기를 귀찮은 것으로 생각하게 되니 차라리 작문 숙제를 내주지 왜 일기를 쓰게 하고 검사합니까.”(정영우 군)

“평소 선생님께 말로 하지 못하는 얘기를 일기에 써서 전할 수도 있고, 특히 학교 폭력 같은 일이 있었을 때 몰래 선생님께 알려 바로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기 검사는 해야 합니다.”(이성현 군)

14일 오전 김해시 구봉초등학고 6학년 2반 어린이들은 일기검사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13일 담임인 강극래(30) 교사가 최근 국가인권위가 ‘일기 검사는 인권침해’라는 결정을 내린데 대해 생각해보고 오라고 한 후 가진 자유발언 시간이었다.

먼저 ‘일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일상을 자세히 보게 하는 수단도 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추억록이자 자서전”(김고은 양)이라거나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타임머신이다”(박인규 군), “오늘의 일을 반성하기 위해 쓰는 글”이라는 일반적인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내주는 과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일기 검사를 하는데 대해서는 “중고생의 사생활은 보호해야 하고 우리는 어리다고 사생활도 없다는 것인가. 선생님이라 해도 관여 말아야 한다”(구샛별 양)는가 하면 “선생님이 일기를 검사하면 꼬박꼬박 쓰기는 하겠지만 진심으로 자기가 한 일을 적지 않고 숨기거나 꾸며내게 돼 거짓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정영우 군)는 부정적인 생각도 많았다. 반면 “일기에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이나 걱정을 많이 쓰는데 일기검사를 하지 않으면 그런 통로가 없어진다”(임은주 양), “선생님이 일기장 여백에 댓글을 써 놓은 걸 보고 반성한 적이 많다. 일기검사는 해도 된다”(박병인 군)는 옹호론도 만만치 않았다.

일기·생활글 분리 등 다양한 개선 의견

앞으로 일기검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대안도 제시됐는데 대체로 일기를 썼는지 여부는 확인하되, 내용을 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일기장에 선생님이 읽어야 할 부분에는 우리끼리 약속한 표시를 해 선생님이 읽고, 나머지는 썼는지만 확인하자”(신동혁 군), “부모님께 일기를 썼는지 검사 받고 검사 받았다는 증거를 선생님께 내기로 하자”(신길섭 군), “일기는 선생님과 의사소통 수단이라는 이유로 일기검사를 할 것이 아니라 학교 홈페이지에 비공개 게시판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우리가 글로 쓰고, 선생님만 그 글을 읽을 수 있게 하자”(박민규 군)는 이야기도 나왔다.

아이들의 발표가 끝나고 강교사는 반 학생 36명의 부모에게 설문을 했는데 인권침해 소지가 있으므로 일기검사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은 6명, 의사소통의 길이 되고 교육적 효과가 크므로 지금대로 검사를 해야한다는 의견은 24명, 인권침해가 안되는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는 의견은 2명, 무응답 4명이었다고 학생들에게 알려줬다.

또 “말로만 여러분을 학교의 주인이라고 말해왔고, 실제로는 어리다는 이유로 통제의 대상으로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된다”며 “인권위 발표를 통해 이같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올바른 것인지 되돌아보고 진정한 사제 관계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겠다”고 마무리했다.

수업이 끝난 후 강교사는 “인권위 결정이 있기전 지난달 한달동안 자유롭게 일기 쓰기를 해봤는데, 일기를 쓴 사람은 반에서 4명 밖에 없었다”며 “이달 들어서는 일기를 썼는지 표시하는 게시판을 교실에 만들어 두고 검사를 하겠다고 밝혔더니 모두들 일기를 쓰고 있다고 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사’가 일기를 지속적으로 쓰게 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또 “일기라 하지 않고 ‘대화노트’나 ‘생활글 쓰기’ 같은 이름으로 지금까지 일기가 해왔던 의사소통 도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진짜 일기는 검사하지 않는 방안도 고민해 봐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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