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인권 경쟁의 시대다. 국가기관들이 앞다퉈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표명하고 있다.

올 초 허준영 경찰청장이 취임사에서 인권 경찰상을 제시한 이래, 경찰청은 2월에 인권보호센터를 발족했고 4월에는 인권보호를 위한 종합추진계획을 발표, 지방 경찰청에 시민인권보호단을 설치하는 등 구체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

제시한 인권 의미 제각각

검찰도 4월 김종빈 검찰총장이 취임일성으로 “인권존중의 선진검찰 구현”을 밝힌 뒤 △국민중심 △인권우선 등 5대 역점시책을 발표해 인권을 가치로 검찰개혁을 진행하고 있고, 법무부도 12일 단행한 검찰 중간 간부 인사에서 무죄분석 결과를 중요하게 반영하여 이른바 인권존중과 수사력을 인사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국민을 통제하고 군림하던 기관들 스스로가 인권을 기준으로 기관을 돌아보고 변화시키고 거듭나고자 하는 것은 격세지감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적어도 국가기관들이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꼼꼼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제시하고 있는 인권은 모두 제각각이다. 인권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이 아니라 기관 관련 문제에서 착안하다 보니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인권을 천부적인 국민의 권리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기관의 시혜적인 것으로 보는 측면도 있고 대국민 봉사나 불편해소를 인권과 동일시하는 인식도 엿보인다.

정부조직법 상 국민의 인권옹호 사무는 법무부 소관이고, 인권피해자의 구제와 제도 개선 및 인권교육·홍보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소관 사무다. 범죄 피해자의 인권이라는 개념을 들고 보면 검찰과 경찰이 주요한 업무 대상이고, 크게 보아 국민의 행정 불편 개선 서비스와 관련한 인권 관련 업무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서 한다. 우리 사회의 봉건적인 관행과 제도로 고통받는 여성의 인권 문제는 여성부에서 맡고 있다. 그 뿐인가 유엔 인권위원회 업무는 외교통상부가 주된 업무가 된다. 법원도 국민의 인권을 주요한 잣대로 사법적인 판단을 내린다.

많은 국가기관들이 인간의 존엄과 기본적 권리 문제를 주요한 국정 방향으로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인권 기준이 적용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국가의 인권 정책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방향에서 보면 결국 기준과 적용의 잣대가 비슷해야 한다. 현재의 상태는 국민의 인권을 들먹이며 자기 부서의 이익을 따지는 낮은 수준은 아닌지 모르겠다.

최종 판단은 국가인권위가

학교폭력이 근절되기 위해서 CCTV를 설치하는 것을 범죄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예방적인 인권보호 조치라고 말하는 수사기관과 그것은 국민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고 보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시각을 놓고 헷갈릴 때가 많다. 국가기관들 자체가 인권문제에 대한 방침이 서로 다른데 국민들은 여간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다.

국가기관들의 인권 정책 경쟁이 표면적이고 자기 부처 이기주의가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것으로 되기 위해서 인권정책의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누가 보아도 인권 문제의 최종 판단은 국가인권위원회가 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 현안에 대한 기관간의 협의를 더 강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기관들의 인권 경쟁은 결국 하나의 수사이거나 기만이 되기 쉽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기관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하나에서 열까지 다 합의할 필요까지야 없지만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은 당황스럽다.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각 기관들의 인권담당관들과 인권전문가로 구성된 인권정책협의회가 지난해 12월에 이미 구성되었다. 하지만 아직 한번도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늦었다. 이러다가는 결국 이 기구는 조정하고 인권의 질적 발전을 위한 국가기관이 아니라 각 부처의 이익을 대변하는 장이 될지도 모른다.

/이창수(새사회연대 대표)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