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마다 일어선다’

5층 흡연구역에서 연출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장성기 조합원.사진/박일호 조합원

양파와 같은 사내. 벗기면 벗길수록 얘기거리가 술술 나온다. 지난 8일 장성기 조합원과 경남대 근처 모 닭집,그리고 칵테일 가게에서 장장 5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 기대했던데로 그에겐 무궁무진한 얘기 거리가 있었다.

가벼운 몸풀기로 학창시절 얘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고1때 까지는 공부를 곧잘했다. 때론 반장을 맡기도 했으니…. 하지만 1학년 2학기부터 주위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친구를 좋아하다 보니 같이 어울리면서 술∙담배∙당구장을 가까이 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마산고(출신고)에 남긴 엄청난 족적을 공개한다.

“마고 개교 이래 삐삐컨닝 1호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삐삐가 유행하지 않을때의 신종 수법이었는데 결국 들키고 말았다. 그때 시험감독을 하던 선생님이 평소 나를 인간적으로 좋아했는데 컨닝을 하는 모습에 크게 실망을 하셨고켜 정학 5일 처분을 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이 사건이 오히려 그에겐 좋은 계기가 됐다.“정학 5일을 받았을때 점심도시락을 열어보니 평소엔 볼수 없었던 통닭 등의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그땐 정말로 눈물이 주루룩 흐르며 이젠 마음을 다잡아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참고로 이날 장 조합원과의 인터뷰에선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이 7~8번 정도는 나왔던것 같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대충 짐작할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장 조합원은 이를 계기로 많이 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계기는 고3때였다. 평소 담임에게 낙인이 찍혀 담배를 피지 않았음에도  오해를 받아 어머님이 학교에 불려 갔던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다른 부모들이 있는 곳에서 자식 교육을 똑바로 시켜라며 노골적으로 말을 하셨다. 어머님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셨는데 그때 이후 마음을 더욱 독하게 먹고 공부에만 전념했다. 바닥을 헤매던 점수가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며 결국엔 대학엘 진학하게 됐다”고 한다.

그의 고등학교 때가지의 얘기만으로도 밤새 얘길 들어도 시간이 모자랄것 같았다.
장성기 조합원은 경남도민일보가 첫 직장이라고 한다. 졸업후 공무원 서험을 1년간 준비했지만 결국 뜻은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1점차로 낙방 한적이 두번 있었다. 1년간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런 경우를 두번이나 당하고 나니 더 이상 의욕이 없었고, 또 직장없이 생활하는 그 자체가 너무 싫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도민일보 사원모집 광고를 보게 된 것이다.“처음엔 전략사업팀으로 지원을 했다. 하지만 회사쪽에서 광고쪽 일을 권유해 이를 수락하면서 경남도민일보에 발을 들이게 됐다.” 광고일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그였지만 1년간의 지친 생활에 무슨일을 해도 잘 할 자신이 있었다는 장 조합원.

5월에 입사했으니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서 그는 많은 경험을 했고 또 자신의 일에 젖어 들어가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첫 광고가 석탄일 광고였다. 창신고 뒷산 불암사라는 곳과 연락이 되어 30분을 끙끙 거리며 산을 올라갔다. 5월이면 거의 초여름이라 정말 땀을 뻘뻘 흘렸는데 그 모습을 본 스님이 그곳까지 찾아온 성의를 봐서라도 광고를 당연히 하겠다고 말하더라. 첫 광고를 한 기쁨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기쁨 속에서 서러움의 눈물도 흘렸다고 한다. “한날은 아침에, 그때는 잘 몰라서 아침부터 개시도 안한 식당을 찾아갔다. 할머니가 주인이었는데 30분 가량 얘길 하고 문을 나서 차를 향하는데 차키를 놔 두고 왔다. 그래서 다시 식당엘 가보니 식당 문앞에 소금이 소복히 쌓여 있더라. 그땐 정말 콧등을 타고 눈물이 절로 나왔다….”

신문사라는 메리트에 환상을 가졌던 그는 실제 현실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젠 생각을 바꿨다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냥 영업을 하러 왔을 뿐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이젠 어떤 일을 겪어도 다 이겨낼 자신이 있다. 지금은 이전부터 광고를 해 오시던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을 인터뷰하는것에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을 했다. 평소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던 듯 하다.
“사실 이런 어려움에 대해 사내에서 모르는 사람은 잘 모른다. 그런것에 대한 이질감이랄까…. 그런 것도 많았다. 나 역시 타부서에 대해 모르는 부분도 많고.  또한 ‘도민일보 기자는 광고와는 별개’라는 그런 정체성 때문에 광고하는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많은게 사실이다. 사실 그런 부분에 대해선 서로 공유할수 있는 부분이 없어 많이 아쉬웠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몰라서 그런 생각을 가진 부분도 많았고 이젠 나 역시 그런 도민일보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장 조합원.

그는 듬직한 덩치만큼이나 생각의 깊이가 남달랐다. 또한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정식 인터뷰(닭집) 말미에 이런 말을 던졌다. “언젠가는 웃을 날이 있을 것이다” 라는…. 그런데 ‘언젠가는’이라는 말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지금은 아니다’라는 말이기에 듣는 이의 귓가를 슬프게 했다.
/남석형 노보편집차장
(노보 <도미니> 12호)

회사생활 나의 활력소 ‘주찬우’


장성기∙주찬우 조합원은 중학교 동창

   
주찬우 조합원.

이번 인뷰터 주인공 장성기 조합원과 주찬우 조합원은 중학교 동창이라고 한다. 정확히 중 2때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독자들은 주 조합원이 보는 장조합원에 대한 글을 기대했겠지만, 본 노보는 상식을 벗어나려 한다.

즉 장성기 조합원이 본 주 조합원의 모습은 어땠을까?

“학교때 나는 반장이었고 주찬우 조합원은 무슨 부장인가 그랬다. 그런데 무슨 부장인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한마디로 주조합원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활달한 성격의 본인과 달리 주 조합원은 조용하며 내성적이었다. 주로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조용히 학교 생활을 하는 학생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일종의 주류와 비주류의 관계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도민일보에서 다시 만나 새로운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장 조합원은 “회사에 들어와 어려울 때 주찬우 조합원이 많이 도와줬다. 일적으로도 그렇고, 심적으로도 그렇고…. 어떻게 생각하면 주찬우 조합원이 없었다면 벌써 회사를 그만 뒀을수도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들은 이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해 있었다.

심지어 주찬우 조합원이 줄줄 핥았던 방망이 사탕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입에 넣는 장 조합원의 모습은 그런 확신을 넘어 묘한 상상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으니….
/남석형 노보편집차장

 

처절했던,  아니 처절한 사랑노래

만남 -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습니다. 그때 군대 후임으로 부터 한 여자를 소개 받았습니다. 그녀는 그 당시 두가지 아픔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사업 실패로 인한 어려운 집안 사정, 그리고 좋아했던 한 사람과의 이별…. 그래서 그녀는 그러더군요. “나는 고슴도치다”라고. 그래서 저는 얘길했습니다. “가시에 찔리는 그 정도 상처는 받을 수 있다”고…. 이렇게 우리는 시작을 했습니다.

교제가 시작되면서 그녀의 집에도 자주 놀러 갔습니다. 한날은 그녀의 아버님과 술을 한잔 했는데 내 두손을 꼭 잡으며 그러시더군요.“너때문에 딸을 다시 찾은것 같다”라고…. 어려운 가정환경에 그녀도 많이 지쳐 부모님과 눈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관계가 안좋았던 겁니다.

이후 그녀의 부모님은 한달에 한번정도 고기를 사서 식구들과 먹을때 꼭 저를 집에 불러 주셨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님 서로가 저에게 고기를 먹으라며 제 앞에 놓아주셔서 제앞은 고기가 수북히 쌓였을 정도로….

저는 그때 이런게 바로 가족의 정이구나 라는걸 느꼈답니다.

헤어진 후 - 그녀와 자주 거닐던 길이 있습니다. 예전에 <로망스>라는 드라마 배경으로 나왔던 진해 벗꽃길…. 그녀와의 추억이 서려 있는 곳. 저는 그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또다른 사람의 두손을 꼭잡고 말이죠. 그런데 그녀가 보이더군요. 나처럼 그곳을 다시 찾은 그녀, 하지만 그녀는 혼자였습니다. 어떤 말을 할수도 없었습니다. 그냥 그렇게 서로는 지나쳐 버렸습니다.

헤어짐 - 가족 같았던 그녀 부모님의 따뜻함…. 하지만 그런 기억 너머로 조끔씩 불안의 그림자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와 헤어지기 석달전부터 조금씩 그녀가 이런저런 거짓말을 하기도 하는 모습이 감지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니 만난지 꼭 2년째 되는 날…. 우리는 2주년 기념 케익의 촛불을 껐습니다. 그녀가 그러더군요. “이젠 날고 싶다고.” 그 한마디였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잡지 않겠다고…. 그렇게 그녀는 떠났습니다. 훨훨… 그리고 영원히….
/장성기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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