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던 이가 쏙 빠졌다’는 말을 종종 한다. 이 말은 직역하면 아프던 이가 빠져서 아주 잘됐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쓰일 땐 다분히 부정적인 의미가 실릴 때가 많다.

밉상이던 동료가 직장을 그만 둔다든지, 직장에서 미워하던 상사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든지, 잘난 척하던 이웃이 이사를 갔다든지…. 기관단체의 경우 출입하던 기자 중 애먹이는(기관단체를 꼬집는 기사를 많이 쓰거나 기관단체의 수장을 곤경에 빠뜨리는 기사를 썼던 기자 등) 기자가 있었는데 다른 곳으로 출입처를 옮긴다든지 하면 출입처 관계자들은 ‘앓던 이가 쏙 빠졌다’고 속시원함을 내뱉곤 한다.

항의하면 “이사가세요”

아파트에서도 앓던 이가 빠지는 일이 있다. 위층집 아이들이 밤낮으로 쿵쿵 뛰어다니다가 이사를 간다고 하면 아래층에서는 ‘앓던 이가 빠졌다’고 비유한다.

법제처가 최근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서 시끄럽게 해 이웃에게 피해를 주면 경범죄처벌법상 인근소음 조항을 적용해 최고 10만원의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유권해석을 내렸다.

과연 이 법규가 실효가 있겠냐는 의문도 있지만 오죽하면 이런 법규까지 생겼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는 공동주택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사는 이들이 대다수다. 젊은 세대일 경우는 더욱 심하다.

이웃 아파트에 이런 일이 있었다. 위층에 30대 초반 부부가 아이 둘과 함께 이사를 왔다. 가장은 직장에 다니고, 세살, 여덟살짜리 아들 둘이 있었는데 여간 설치는 게 아니었다. 두 아이들이 밤낮도 없이 운동장처럼 거실을 뛰어다니는 통에 아래층 사람들은 잠을 이룰 수도 없고,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뛰는 소리가 나면 깜짝깜짝 놀라기 일쑤였다.

아래층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위층 벨을 눌렀다. 공동주택이니까 아이들 뛰는 것을 조금 단속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위층의 젊은 아낙은 “애들이 뛰어노는 걸 기죽게 어떻게 말려요? 시끄러우면 이사가세요”라며 도리어 화를 냈다.

아래층 사람은 기가 막혀 관리소에도 얘기를 하고 엘리베이터 안에도 공공질서를 지키자는 내용의 벽보를 붙여 아파트 이웃간의 예절에 대해 알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위층 아이들은 여전히 쿵쿵거렸고, 아래층 식구들 중 한 명은 소음 때문에 지병인 심장병이 심해질 정도로 신경이 예민해졌다. 위층과 아래층은 결국 원수지간이 됐다. 그러기를 2년, 위층 가족이 이사를 갔다고 했다. 정말 앓던 이가 쏙 빠진 것처럼 시원했을 것이다.

“나만 행복하면 된다” 위험

현행 법에서 아파트 층간 소음은 사회통념상 ‘참을 수 없는 시끄러움’이라고 정해두고 있다. 사실상 아파트 소음 문제는 당사자들 사이에 합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경찰이 개입해서 처벌할 만한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또 법적으로 해결한다고 해도 이렇다할 해결책이 없는 게 현실이다.

실제 올해 1월 서울 남부지법은 서울 강서구 한 아파트 10층과 11층에 사는 이웃끼리 벌어진 층간 소음과 관련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은 층간 소음 피해를 인정해 아래층의 손을 들어줬으나 2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원심을 파기했다.

2년 가까이 진행된 이 소송에서 보듯이 아파트 층간 소음을 ‘소음’으로 인정할 자료가 별로 없다. 신고가 접수됐다고 해서 경찰이 하루종일 소음측정기를 들고 아래층에서 소음을 측정하는 실험을 해보기도 여건상 어렵다고 한다.

기본적으로는 아파트를 지을 때 시공사가 층간 소음을 방지하는 건축자재를 사용해야 한다는 법규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이웃간의 예절지키기도 매우 중요하다. 내 가족만 잘 살면 되고 내 가족만 행복하면 된다는 가족 이기주의에 빠진 젊은 세대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다른 사람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 사회의 구성원이다. 이웃들이 내 가족 때문에 힘들어하고 불행하다면 한번쯤 내 가족의 행동을 되돌아봐야 한다.

벌금 ‘10만원’이라는 금액이 어떤 기준으로 정해졌는지 모르겠다. 윗집과 아랫집 사이의 소음에 대한 처벌의 잣대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10만원에 자신의 양심을 파는 비열함은 없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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