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경남시사랑문화인협의회와 시민단체가 노산 이은상이 쓴 서울 수유리에 있는 사월학생혁명기념탑 비문을 철거할 것을 주장했다. 이 주장은 과거사 청산 문제, 마산문학관 명칭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이은상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이은상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이다. 뛰어난 문학적 업적을 남긴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일제 때 친일행적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특히 해방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아부하고 권력을 좇으며 살았던 어용 지식인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즉, 3·15의거가 일어나기 얼마전 이은상은 ‘문인유세단’을 조직하여 자유당 선거 유세를 지원하면서, 당시 시국을 임진왜란과 비교하여 이승만을 이순신과 같은 사람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5·16군사쿠데타로 박정희가 집권하자 공화당 창당선언문을 써주기도 하며 박정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새로운 군사정권이었던 전두환 정권에도 적극 협조했다.

4·19혁명은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한국민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쾌거였다. 알다시피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 3·15의거였다. 이은상은 이러한 3·15의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마산에서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3·15의거가 일어나자 ‘무모한 흥분’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불합리·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라고 규정했다. 시위가 확대되는 것을 ‘마산사람’으로서 염려하며 마산시민들에게 “자중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하였다.

3·15의거가 계기가 되어 발생했던 4·19혁명을 기념하는 기념탑 비문을 3·15의거를 부정하고, 독재정권에 아부했던 이은상의 글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독재타도와 민주주의실현을 지향했던 3·15와 4·19의 역사를 왜곡하고 희화화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목숨까지 바쳤던 영령들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비문은 철거되어야 한다.

비문이 민족정신을 내세우고 민주이념의 수호자로 이은상을 미화시키는 일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비문철거 요구가 이은상에 대한 철저한 평가작업으로 이어져 마산문학관 명칭문제도 하루 빨리 해결되길 기대해 본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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