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놈들이 저들의 침략야욕을 미화하는 역사 교과서 왜곡과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는 주장의 강도를 점차 높여가고 있다.

땅에 대한 주권은 그것을 먼저 발견하고 개척한 주민들과 그 주민을 통해 그 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국가에 속한다고 한다. 그런 관점이라면 독도는 한반도에 속한 땅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독도 땅이 오늘날에 와서 새삼 일제에 의해 영유권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장 가까운 이유는 말할 필요 없이 교과서 왜곡으로까지 자신의 과오를 오히려 미화하려는 일제의 구시대적 영토침략 야욕 탓이다.

그러나 일제가 독도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억지를 부릴만한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와서 우리가 수비대나 경비대를 두고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랜 세월동안 독도는 주민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었다.

뭇 생명들이 살고 있었네

바로 그런 이유로 독도가 한일간에서 영토주권 마찰을 일으키자 근대화개발론의 적자 김종필은 독도를 아예 폭파해 말썽의 소지를 없애자는 극단적 망언까지 내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인도면 또 사람이 아무도 밟지 않은 전인미답의 무인지경이면 아무나 먼저 들어가 개발과 지배의 이름으로 마구 파괴하거나 그럴 가치가 없을 때는 폭파해 버리자는 폭언을 해도 되는 것인가?

독도는 사람들이 들어가 정주할 수 없는 무인도이기 때문에 오랜 옛날부터 갈매기를 비롯한 바다새들의 천국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독도는 우리 땅이기 전에 우리보다 훨씬 먼저 깃들어 사는 뭇 생명들의 땅인 것이다. 땅에 대해서, 모든 생명과 생태자원에 대해서 이와 같은 생명평등평화주의의 관점을 회복하지 않는 한 이 땅으로부터 침략과 전쟁과 살육의 역사는 결코 끝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독도영유권 분쟁을 불러온 원인은 일제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에게도 있을 것이다. 우리도 원래 새들의 보금자리를 제 것 인양 차지하는 침략근성으로 안에서 내응하며 자초했기 때문에 일제가 이를 최대한의 기회로 삼고 그것을 확대 재생산 했을 것이다.

개발 신화 극복 못하면?

그 내응의 확실한 증거가 다름 아닌 요즘 지식인(학자)들의 상당수가 주장하고, 많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일제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일제 침략의 목적은 명백히 지배와 수탈에 있었지만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근대화를 촉발시켜 오늘의 이 물량화를 가져온 초석이 되었다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주장이다.

근대화 신화에 대한 절대적 맹신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에게만 그치지 않고 한 때의 민주화주의자, 개혁진보주의자, 심지어 사회주의자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한동안 수면아래 잠재해 있던 식민지 근대화론은 박정희의 근대화 업적 재평가와 함께 수면위로 올라 온 것 같다. 70~80년대의 우리 민주화 투사들이란 하나같이 박정희와 그 후계자 전두환의 반대론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도 외국유학을 다녀와 한자리 얻어 걸리거나 정파의 보스를 잘 만나 정계에 진출한 뒤부터는 박정희의 인권탄압은 비난받아 마땅하나 그의 근대화 업적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합창하고 있다.

박정희의 근대화는 그가 우리의 독립군을 때려잡던 일제 관동군장교 출신이고 쿠데타 이후 장기 집권할 때 하필 일제의 명치유신에서 그대로 이름을 따온 유신체제를 도입한 애일파(愛日派)라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식민지 근대화론의 복사판 내지 연장판이다.

설사 식민지 근대화론을 아무리 반대한다 해도 박정희 근대화를 지지하는 한, 둘 다의 지지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중 잣대를 가진 사람들이 일제로부터 우리 땅과 문화를 제대로 지켜낼 수 있을까? 본질적으로 폭력적인 근대화만이 절대 선이라고 믿는 개발신화를 모든 사람들이 극복하지 못하는 한 이 땅 위에서의 생명평화와 평등은 결코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천규석(농민·대구한살림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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