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DAY)’ 상술인가 기법인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소비를 촉진한다는 각종 마케팅 기법은 ‘상술’이라는 비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소비자로 하여금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인 의도로 무언가 사고 싶은 욕구를 부추겨 이른바 ‘허위욕구’를 만들어낸다는 것.

그 중 출처 불분명한 외국산 ‘~데이(day)’들은 특히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겨냥한 ‘상술’로 비난의 핵심에 있다.

‘소비진작이냐 과소비·허위욕구냐’의견 분분

◇ 상업적 ‘데이’들

대표적으로 밸런타인 데이(2월 14일)를 확장해 만든 각종 14일 기념일이 달마다 있다.

다이어리 데이(1월14일)·화이트데이(3월 14일)·블랙데이(4월 14일)·로즈데이(5월 14일)·키스데이(6월 14일)·실버데이(7월 14일)·그린데이(8월 14일)·포토데이(9월 14일)·와인데이(10월 14일)·무비데이(11월 14일)·머니데이(12월 14일) 등이 그것.

여기에다 11월 11일 빼빼로 데이, 2월 22일 커플 데이 등은 각종 유통업체들이 우리 사회 주요 소비자로 급부상한 10대들을 겨냥해 만든 특수 중의 특수. 10대들이 주축이 된 소비문화라고 하기에는 그야말로 상혼 밴 흔적이 완연하다.

일례로 빼빼로 데이의 최고 수혜자 롯데제과의 빼빼로는 지난 83년 판매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22억갑이 넘게 팔렸다. 빼빼로 데이가 자리를 잡으면서 지난해에는 4년 전 매출(260억원)의 두 배가 넘는 기록을 달성해 관련업자들을 즐겁게 했다.

그렇다고 기념일을 정해 판매와 홍보를 펼치는 ‘데이 마케팅’ 전체를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다.

공익적인 가치를 띠고 캠페인 성격이 짙은 기념일을 지정해 소비자에게 정보를 주고 올바른 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면 ‘상혼에 멍든’ 데이 마케팅의 체면을 어느 정도 살릴 수 있을 듯.

문제는 판매하고자 하는 상품의 성격·공략 대상·취지와 수혜자를 따져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경남대 지성구(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소비 진작·내수 증대 등의 효과를 누린다고 할 수 있겠지만 촉진과다나 낭비적인 소비, 또 10대를 겨냥한 기업의 윤리적인 문제점 등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주부 조혜자(37·마산시 내서읍)씨는 “따져보면 다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겠지만 의미를 떠나 상업적으로 이용된다는 점에서는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상품을 팔고자 하는지, 누구를 목표로 하고 있는지 따져보고 판단할 수 있게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작은 이벤트라도 자신만의 방식 찾는게 중요”

◇ 우리 농산물 살리는 ‘데이’들

주로 농협과 양계·양돈협회 등이 주축이 돼 만든 기념일이 있다. 3자가 두 번 겹치는 3월 3일은 돼지고기 먹는 ‘삼겹살 데이’, 5월 2일은 (사)한국오리협회가 주관하는 ‘오리데이’이기도 하고, 발음 그대로 오이를 먹자는 ‘오이데이’이기도 하다. 9월 2일은 구워서 먹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닭고기 판매 촉진을 위한 ‘구이데이’, 9월 9일은 닭 관련 음식을 먹는 ‘구구데이’다.

10월 24일은 둘(2)이서 사(4)과 한다는 의미로 사과를 주고받는 ‘애플데이’로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즐거운 학교만들기’를 펼치고 있는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가 농협과 함께 만든 날.

올해 처음으로 ‘토종 화이트 데이’도 선을 보였다. 지난 4월 9일은 새해 99일째 되는 날로, 99세를 백수(白壽)라고 부른 데서 착안한 것. 이날 대표적인 백색고기인 닭고기를 많이 먹어 백수까지 건강하게 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마산시가 매달 11일을 ‘두발로 데이’로 정해 걷는 문화를 확산하고 환경을 생각하는 계기로 삼은 것이나 산청군이 지리산과 발음이 비슷한 7월 23일을 ‘지리산 데이’로 만들어 지리산을 보호하고 그 아름다움을 알리는 날로 삼고 있는 것도 캠페인 성격의 데이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경남농협 관계자는 “우리 농산물의 우수성을 알리고 어려운 농가를 돕는다는 이런 기념일들도 ‘생색용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며 “좋은 의미의 이런 ‘데이’들을 더 많은 소비자들이 기억하고 이용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보컨설팅을 하고 있는 김쌍희(35)씨는 “무감각해지기 쉬운 일상 속에서 작은 이벤트라도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바람이 이런 마케팅을 낳은 것 같다”며 “기념일을 즐기는 방법을 천편일률적인 상품 소비가 아닌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보는 것도 상술에 흔들리지 않는 지혜”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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