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로 촉발된 항운노조 비리문제가 올해 초부터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됨에 따라 파장이 커지고 있다. 기아자동차 노조의 채용비리문제와 함께 노동운동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검찰수사 강도가 예상과 달리 높아지고 수사의 범위도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비리의 철옹성’이라고 알려진 항운노조의 비리실체가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검찰수사 결과 나타난 것만 해도 가히 ‘비리 백화젼을 방불케 한다.

제왕적 지도부, 족벌체제, 채용‘전배과정에서의 금품수수, 노조기금 횡령, 임단협 과정에서의 금품수수 등. 항운노조 비리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일부 간부들만 연루된 우발적 사건도’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관행화된 구조적 비리’이다. 또한 노조만의 비리도 아니다. 각 이해당사자들이 거미줄처럼 얽힌 총체적인 문제이다.

항만노사관계는 여타 다른 산업의 노사관계와 다른 특성을 보인다. 핵심은 가장 강력한 노동조합 가입유형인 클로즈드 숍(closed shop)제도와 노동조합에 의한 노무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비리백화젼방불케 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항만노사관계 재편과정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하역업체에서는 이 기회에 항운노조의 독점적 기득권 박탈을 천명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동안 정부, 하역업체, 항운노조는 일종의 ‘담합체제’를 유지해 왔다.

항만산업은 국민경제에 있어 ‘동맥기능’을 담당한다. 따라서 정부로서는 항만파업이 초래하는 파급효과를 감안해 ‘길들어진 노동조합’이 필요했다. 그 결과 87년 이전에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항만의 무파업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또한 매년 반복되어온 ‘노사정 평화선언’행사도 항운노조가 정부의 매력적인 파트너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역업체들도 담합체제의 직접적인 수혜자였다. 노무공급독점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항운노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업화된 노동조합’으로 변질되었고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을 통제함으로써 노무관리 비용은 물론 노사관계의 절대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법적으로 항만노동자의 사용자 지위는 근로자 공급사업의 주체인 항운노조가 되어 하역업체는 법적인 사용자 의무를 회피하면서 책임경감 효과를 보았다.

평조합원들이 혁신 앞장서야

이번 검찰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항운노조는 ‘간부노조’(crade union)의 성격을 갖는다. 간부노조는 조합원들로부터 자립한 노조가 조합원의 이해관계를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간부들의 이해관계 자체가 목적이 되는 노조를 말한다. 이러한 조직의 리더십은 대단히 관료적·권위주의적이고 조직의 운영구조 및 의사결정과정은 일부 간부들에 의해 독점되는 폐쇄적 구조를 갖는다. 따라서 담합의 ‘과실’은 항운노조의 전체 구성원이 아니라 특권적 지위를 향유했던 일부 간부들에게만 돌아갔다.

항운노조 비리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담합관계를 해체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담합관계의 최대 피해자는 현장에서 숨죽이며 묵묵하게 일해 왔던 항만노동자들이다.

항만노무공급체제를 비롯한 항만노동개혁의 칼자루는 정부로 넘어갔다. 이미 부산과 인천항운노조는 정부의 방침을 수용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그러나 정부로서도 ‘단계적 상용화’라는 방침을 표명하긴 했지만 뚜렷한 대안 제시는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 항만노사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항운노조의 비리를 빌미로 항만노동자들의 고용불안정을 조장한다거나 하역업체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민간 파견업체의 활용안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상용화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급증하였고 일자리 자체도 줄어들었다.

항운노조의 일대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항운노조의 ‘풀뿌리 비리구조’를 척결하는 주체는 평조합원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리에 연루된 간부들은 물론이고 책임 있는 간부들은 전원 사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항운노조가 새롭게 혁신해 항만노동자들을 위한 ‘민주노조’로 거듭나길 바란다.

/백두주(경남대 사회학과 강의전담교수)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