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한국 근·현대사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기회주의자만 살아남는다는 교훈을 철저히 각인시켜온 역사’라고 말하고 싶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강하면 부러진다’, ‘줄을 잘 서야 한다’, ‘앞장서지 말고, 뒤 처지지도 말고 중간에만 서라’…. 아마도 우리가 어릴 때 부모님이나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듣고 자란 이야기가 이런 속담이었을 게다.

한마디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회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기 자식이 똑똑하고 정의롭게 자라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런 ‘똑똑하고 정의로운’ 인재들이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 무수히 ‘골로 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아 왔던 탓이다.

박정희와 이순신은 동격?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 직후까지 ‘배운 사람 치고 빨간 물이 조금이라도 들지 않은 이가 없었고’, 그런 똑똑한 사람들이 모두 감옥으로 가거나 쫓기는 몸이 되어 군경 토벌대에 소탕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부모세대였던 것이다. 심지어 그런 과정에서 ‘과오를 뉘우치고 국가의 교화를 충실히 받겠다’며 가입한 무려 수 십만 명의 보도연맹원까지 아무런 재판절차없이 집단학살(Genocide) 당하고 말았으니, 그 시대를 살아온 누구인들 감히 앞의 그런 속담들을 부정할 수 있었으랴.

특히 가난한 살림에 못배운 한을 풀기 위해 ‘우골탑’이란 말까지 만들어내며 자식을 도시로 유학 보낸 부모들의 근심은 더했다. ‘읍내 박씨네 둘째 아들이 그렇게 똑똑했는데, 대학까지 가서 운동권에 휩쓸리는 바람에 신세 조져 버렸단다’는 유의 이야기가 괴담처럼 떠돌아 다녔고, 그럴 때마다 우리네 부모들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되뇌셨다.

그런 시절에 우리가 가장 본받아야 할 위인은 충무공 성웅 이순신 장군이었다. 그리고 현실 속의 또다른 성웅은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임금이 무능하든 말든, 대신들이 당파싸움에 몰두하건 말건, 심지어 자신을 모함하여 삭탈관직을 시키든 말든, 오로지 임금과 나라에 맹목적인 충성을 바쳤던, 그리하여 장렬한 최후까지 마친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런 위인이 되려면 임금과 나라에 비판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정권과 국가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다는 건 곧 ‘사상이 꼬롬한’ 일이었고, 그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

힘센 놈에게 붙어야 출세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는 그런 이순신과 달리 혼란스런 정국을 틈타 쿠데타로 집권한 군인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우리의 머리 속엔 박정희와 이순신이 동격의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교과서의 삽화 속에서 북한은 늑대로 그려졌고, 그 늑대들의 무리 속에서 착한 양을 지켜주고 있는 인물이 박정희였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민주주의의 토착화’와 ‘한국적 민주주의’ 교육을 받았다. 그게 유신헌법이었다. 그러다 79년 10월 박정희가 부하의 총에 피살되었을 땐 엄청난 충격과 함께 공포를 느꼈다. 이젠 우리를 지켜줄 이가 없으니 곧 머리에 뿔난 괴뢰군들이 쳐들어올 줄 알았던 것이다.

박정희의 실체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것은 그 이후였다. 일제 땐 일본군 장교였고, 해방 직후 좌익의 힘이 강할 땐 남로당에도 관여했으며, 이후 미국과 이승만이 정국을 장악하자 열렬한 반공주의자로 변신에 성공, 4·19 직후 혼란을 틈타 쿠데타로 집권에 성공한 정치군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박정희의 삶은 60년 3·15부정선거의 원흉 이승만을 성웅 이순신과 같은 분으로 떠받들며 이에 항거한 마산시민의 의거를 폄훼하고 모욕한 이은상의 삶과도 너무나 닮아 있다. 철저히 양지만을 좇아 살아온 것이 그렇고, 성웅 이순신을 전면 부활시켜 현실 권력자와 동일시하도록 만든 게 또한 그렇다.

이러한 박정희와 이은상의 이름을 딴 기념관이나 문학관이 세워졌을 때, (설사 공과 과를 함께 전시한다 하더라도) 그곳을 관람한 우리의 자녀들은 과연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나라와 국민을 배신하고서라도 어떻게든 힘있는 쪽에 붙어 출세만 하면 된다.’ 이 외에 또 뭐가 있을까? ‘모난 돌이 정 맞으니 나서지 마라’에서 이젠 ‘힘센 놈에게 붙어서 무조건 출세하라’로 바뀌었으니 그나마 발전한 것 아니냐고? 거기에 동의할 수 없는 우리는 아직도 ‘모난 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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