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실컷 웃어만 주이소”

지역 축제 볼거리 중에서 신명나는 각설이 마당을 빼놓을 수 없다. 벚꽃이 늦게 펴 예년 같은 흥은 나지 않지만 각설이 공연을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여기저기서 서로 엿을 사겠다고 나서는 이도 있고 온몸으로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 각설이에게 돈을 쥐어주는 구경꾼도 있다.

이제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 진해 중원로터리와 해군인쇄창, 해군사관학교 앞의 각설이 공연장에는 넋을 놓고 목을 빼고 있는 구경꾼들로 가득하다.

각설이패를 이끌고 있는 청도기획 이종렬(56) 단장은 봄부터 가을까지 축제가 열리는 전국을 누빈다. 말 그대로 전국구. 3월 청도 소싸움대회를 시작으로 벚꽃이 피는 곳을 따라 올라간다. 진해군항제부터 벚꽃 축제를 여는 동네를 따라 서울 여의도까지 올라간다. 여름에는 해수욕장 축제, 가을에는 단풍축제. 겨울에는 회갑연 같은 행사를 찾는단다.

사업 실패 딛고 딸과 함께 시작, 10년째 전국 누벼

밀양이 고향인 그는 10년 전부터 전문 각설이패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까지 직접 공연을 했지만 몸이 좋지 않아 단원들 뒷바라지가 그의 몫이다. 프리랜서인 단원들은 행사때마다 모였다 헤쳤다 한단다. 단원 중에 제일 젊은 ‘효녀각설이’이미영(24) 씨는 그의 딸. 아버지를 따라서 각설이 공연을 시작한 미영 씨는 KBS 〈인간극장〉 ‘스물 둘의 유랑일기’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단장은 “공연하면 풀로 8시간까지 하기도 하는데 누구도 흉내내지 못합니다”며 “어떤 때는 마약 먹었다고 오해받아 경찰에 붙들려 가 강제로 피도 뽑힌 일도 있어요”라고 전했다. 흥이 없으면 못하는 일이다.

그는 장사꾼으로 보지 말아 달란다. 공연장에서 엿을 팔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노래테이프를 파는데 사기 싫으면 그만이다. “꿈이 많은 사람들인데 무명가수지만 유행가를 불러 만든 노래테이프를 팔기도 합니다. 본무대에 올라가는 게 이들의 희망입니다.” 그러나 각설이는 각설이일 뿐이라며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란다. 그래도 이들은 ‘이름 없는 연예인’이다.

수산업, 장사, 농사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라는 그는 번번이 실패를 하고 죽으려고 마음까지 먹었다가 마음을 비우고 시작한 일이 각설이였단다. 당시 열하나, 열셋, 열여섯 된 딸 셋과 길을 나섰단다. 4~5년 전에 진해에서 공연을 하다 아이들이 그의 딸인 줄도 모르고 앵벌이로 몰려 경찰에 붙잡혀 다음날 바로 풀려나긴 했지만 그때 상처가 컸단다. 아픈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아무도 두렵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강한데 제일 약한 게 내 아픈 사연을 이야기 할 땝니다.”

“물건 파는 장사꾼 아니다…본무대 서는 것이 꿈”

그래도 진해가 제2의 고향이 돼서 정이 들었다는 그는 해마다 진해 군항제를 빼놓지 않고 찾는다. 행사주최측에서 반겨주지도 않고 도와주지도 않지만 사람들에게 멋진 공연으로 웃음을 주는 게 그의 보람. 다른 엿장수들처럼 자릿세 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장사꾼이 아니란다. “가수자격증도 있는 딸에게 거지옷을 입혀서 엿 팔려고 왔겠습니까. 군항제라는 잔치판에 각설이가 찾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공연비를 받고 못 올망정 자릿세가 무슨 말이냐고 덧붙였다. 자릿세를 내면 그만큼 돈을 남기려고 장사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단다. 그래서 그는 “다른 엿장수와 같이 보지 말아달라”고 하는 게다.

그는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각설이들이 제대로 인정받고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하고 싶단다. 지역 축제장에도 신명나게 실력을 맘껏 보여줄 수 있도록 무대를 지어주지는 못하더라도 자리는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번 주말에 진해로 와서 만발한 벚꽃도 즐기고 재미난 각설이 공연도 보고 가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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