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타계한 ‘자갈치 아지매의 화갗 현재호 화백은 평생 어시장 상인만을 그렸다. 그의 소박한 화실 또한 어시장 안에 있었다. 그에게 어시장 여인네는 신산한 삶을 보듬어 안아 키운 ‘어머니’ 그 자체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 정이 있고, 사는 멋이 있으며, 퍼덕이는 활기로 가득 찬 삶의 현장, 그것이 화백과 우리 모두에게 각인됐던 어시장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그가 더 이상 어시장 그림을 그릴 수 없듯, 어시장의 옛 이미지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것이 됐다.

얼마 전 만난 어시장의 한 상인은 “어시장에 젊은 사람들이 오면 좋을 것”이라 했다. 이유인즉 “늙은 사람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힘을 얻을 수 있어서”라는 것이다. 어시장이 ‘에너지 가득한 삶의 현장’이 아니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합소’이기 때문에 한 번 와보라는 그의 권유는, 백화점과 할인점만 찾는 소비자에 지쳐 인상이 강퍅해진 상인들의 얼굴과 겹치면서 재래시장의 현실을 아프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절망을 말하는 이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희망이었다. 터널 끝이 안 보인다, 좋은 시절 다 갔다고 목청을 돋우면서도, 경기가 나아졌다는 각종 지표들을 헛소리라고 성토하면서도, “거짓말이라도 나아진다니까 희망을 갖고 싶다”고 귀띔했다. 지금 유통가는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약육강식의 전쟁터에 가깝다. 재래시장 고객을 몰고 간 중·소형 할인점은 인근 대형 할인점 때문에 문을 닫고, 문을 닫은 중·소형 할인점은 더 큰 대형 할인점이 인수돼 이전의 할인점을 망하게 한다. 예전에는 공략지점이 달랐던 백화점과 대형 할인점도 이제는 서로를 벤치마킹하며 고지 탈환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어시장과 재래시장은 어쩌면 서둘러 뺨 맞고 무대 아래로 내려간 셈이다. 이렇게 된 바에야 어시장을 비롯한 재래시장 상인들의 생존 전략은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길뿐이다. 이는 재래시장 특별법을 시행한 정부나 재래시장 살리기 대책을 진행하고 있는 마산시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차피 바닥에 있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는 이 지점이 무언가 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지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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