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초저금리 소득감소 끝없이 양산되는 실업자




‘20 대 80 사회’의 심각성은 중산층의 붕괴에 있다. 굳이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아도 지난 3년간 구조조정의 직격탄은 사회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산층을 향해 날아 왔다. 외환위기에 따른 구조조정.실업자 양산, 사회안전망 미비 등으로 우리 사회는 중산층의 분포가 옅어지면서 새로운 양극화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본격적인 계급사회로 진입하는 암울한 신호가 피부로 감지될 정도라는 표현이 설득력을 갖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고물가.저금리’ 현상이 낳은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푼 두푼 저축해 이룬 ‘자수성가형 중산층’이 하류층으로 편입될 위기에 처해 있다. 누구나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예전의 관념은 실종되고 한탕주의를 좇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경기침체의 지속은 금융차입의 증가로 이어지고 ‘집 팔고 전셋집을 빼 이자 메우는’ 현상이 일반화되면서 외환위기 초기모습을 방불케 한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한때 주춤했던 개인파산의 급증은 이를 반영하는 현상의 하나이다.

▶소득불균형의 심화

외환 위기 이후 심화된 도시근로자가구의 소득불균형 구조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도시근로자가구의 소득불균형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균형 정도가 높음)가 0.317, 소득이 가장 많은 상위 20%의 하위 20%에 대한 소득배율은 5.32를 기록했다. 이는 외환 위기 이전인 97년의 0.283.4.49에 비해 악화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득불균형을 드러내는 가장 최근 자료의 하나인 국세청의 ‘99년 근로소득 과표 계급별 현황’에 따르면 연봉 1억원 이상의 소득자가 97년 7000명, 98년 8000명, 99년 1만5000명으로 1년새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반면 소득이 면세점(99년 기준 83만5000원) 이하여서 세금을 내지 않는 과세미달자는 387만명으로 98년(307만명)보다 80만명이 증가했다. 더욱이 연 1000만원 이하의 봉급생활자는 414만2000명으로 전체 봉급생활자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중산층의 주류를 이루는 봉급생활자의 실태는 중산층 붕괴를 나타내는 바로미터라 볼 때 심각한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

▶소득의 양극화 = 소비의 양극화

경남도가 외환 위기 기간 조사한 지역 실태 또한 이를 극명하게 표현해 준다. 경남도의 ‘98년 도민 생활수준 및 의식조사’에 따르면 월 소득이 90만원 미만의 가구가 28.3%, 200만원 이상은 21.4%로 집계됐다. 이 시점이 퇴직금이나 여유자금을 보유한 게 일반적인 IMF 관리체제의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양극화 구조가 공고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99년과 2000년도의 조사는 더욱 우울하다. 99년에는 소득에 대한 주관적 평가가 ‘조금 부족’하거나 ‘매우 부족’하다가 전체의 76.7%를 차지하며, ‘조금 여유’ 이상은 3.2%에 불과했다. 지난해의 주관적 사회계층 조사에서도 하류층이라 생각하는 가구가 54.8%, 중류층은 39.5%에 달했다. 이같이 심리적으로 하류층에 편입된다는 관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월 평균저축액이 150만원 이상인 가구는 2.1%(98년 경남도 조사)에 불과했다. 보다 구체적인 수치인 경남은행의 집계에 따르면 올 4월말 현재 174만명의 고객중 월평균 잔액이 100만원 이상인 고객은 24.2%인 42만1000명에 그쳤다. 경남은행의 개인고객 점유율을 감안할 때 중간층은 20%대를 넘지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득의 저하로 금융권 부채가 늘어나는 가구가 많고 예금 잔액이 적다는 것은 소득불균형에 따른 중산층의 몰락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지난해말 마산 한 백화점의 경우 월 평균 100만원 이상씩 물품을 구입하는 고객이 600여명에 이르렀다. 소득의 양극화가 소비의 양극화, 전체의 20%가 사회의 모든 생산과 소비를 독점한다는 우려가 나올만한 지표다.

나아가 “소득불균형이 경기회복으로 해소된다고 볼 수 없다”는 경제전문가들의 지적은 앞으로의 전망을 더욱 흐리게 한다.

▶초저금리, ‘저축할수록 손해’중산층을 더욱 옥죄는 것은 초저금리 현상이다. 실질 예금금리가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낮아 예금하면 오히려 손해보는 세상이다.

최근 정기예금의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인 연 5%대로 떨어졌다. 이중 16.5% 수준인 이자 소득세를 물고 나면 수익률은 4%대로 줄어든다. 이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 이상을 기록하면 당연히 세후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진다.

4월중 경남의 소비자물가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5.3% 올랐다는 점을 대입하면 실질금리는 이미 마이너스다. 물가당국은 하반기에 소비자물가가 3%대로 진정돼 연평균 4%대 상승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이 경우도 세후 실질금리는 0% 안팎에 불과하다. 은행에 저금하는 것보다 장롱에 그냥 넣어두는 게 이익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산층은 자수성가형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한푼 두푼 모아 집을 장만하고 자녀들의 교육비를 마련하거나 재테크해 노후생활을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전까지는 고금리 덕분에 이같이 형성된 돈을 불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같은 중산층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저금리의 악순환은 청.장년층 위주의 근로소득자나 채무자의 경우 저축의지의 감퇴→대출 및 소비의 증가→신용불량자의 확대로 이어진다. 퇴직자 등 이자소득 생활자 역시 소득 감소→소비 감소 및 고수익 상품 모색 등으로 악순환의 고리가 연결되면서 중산층의 붕괴를 낳는다. 이같은 악순환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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