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던지는 선배의 한 마디내 몸 무장하는 갑옷이 되었죠”

여론팀에 있을 때였습니다. 수습 기간을 마치고 두 번째 아니면 세 번째 취재노트를 썼을 때라고 기억합니다.

지금도 취재노트 쓰는 게 만만치 않은 작업이지만 그 때 부담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다른 일을 번갈아 해가면서 잠시 취재노트를 한참 써 내려갈 때였습니다.

뒤에서 잠시 싸늘한 기운이 돌더니 혀를 차는 듯한 소리가 들렸습니다.(물론 실제로 혀를 찬 것은 아니고 제가 그렇게 느꼈습니다.)

돌아보니 한 선배께서 물끄러미 모니터를 보고 계셨습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더 이상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안 그래도 부담돼 죽겠는데 옆에서 누가 보고 있다니….

“취재노트를 그렇게 쓰나? 누가 그렇게 쓰라고 하데?”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너무 날카롭게 가슴을 찔렀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온 몸은 굳어버렸습니다. 선배는 다른 신문들의 예를 들어가며 여러 가지 설명을 해줬지만 그 날 취재노트를 어떻게 마감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입니다. 미디어 면에 기사를 쓰다가 오보를 냈습니다. 시말서도 썼고 피해자라 할 수 있는 다른 신문사 기자에게 전화로 욕도 한 바가지 얻어먹었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다른 사람 얼굴 쳐다보기도 민망하고 누가 말 거는 것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회사에 들어오신 그 선배는 조용히 불러 5층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뽑아줬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모르거나 애매하면 항상 물어보면서 해라.”

그리고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며 몇 마디 격려하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많은 말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가끔 던지는 한 마디는 내 안의 나태함을 찌르고 다시 내 몸을 무장하는 갑옷이 되곤 했던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두 번째 취재노트를 보내고 며칠 뒤였을 겁니다. 권영길 의원 단식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회사 일 때문에 전화한 그 선배는 “취재노트 잘 봤다. 잘 썼데”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진심인지 그냥 인사차 한 말인지 생각할 겨를 없이 흥분해버렸습니다.
“선배 덕분이지요. 저 취재노트 쓰는 법 선배께 배웠잖아요.”

선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시간 되면 기자회 모임에 참석하라고 전했습니다.

박영수 선배께 고마운 마음을 담아 스프링노트 한 권과 파커(Paker) 볼펜 한 자루를 선물하고 싶습니다.(1만원~1만5000원으로 예상)선배! 맡으신 기자회장도 잘 해내시고요. 다른 후배들에게도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분 좋게 칭찬 받아주십시오.

/이승환 조합원(서울 파견)

[도미니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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