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를 의미하는 20대 80 사회는 ‘서울공화국 대 지방자치’로도 풀이할 수 있다. 한국의 또다른 별칭인 서울공화국은 지역경제와 지역사회 문화를 중앙에 예속시키면서 20대 80 사회를 심화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중 경제와 교육, 그것도 대기업 본사 이전과 지방인재 육성이라는 두가지 측면에 집중해보자. 이는 극도로 심화되고 있는 중앙집중을 분산시키는 일임과 동시에 경남이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대기업 본사를 경남으로 옮기자 = 두산중공업은 우리나라에서 지방에 본사를 둔 몇 안되는 대기업 중 하나다. 두산중공업의 본사는 창원에 있다. 대기업의 본사가 지방에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법인세와 종합토지세.건물재산세 등 각종 지방세가 해당 지자체에 귀속된다.

창원시 관계자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이 지난해 창원시에 납부한 지방세는 107억7900만원 정도. 지난 99년 104억에서 조금 더 는 수치다. 어림잡아 해마다 105억원 정도가 지방세로 꼬박 확보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 두산중공업측은 임직원들의 주민세와 소득세까지 포함한다면 한해에 1000억원 가량의 지방세를 내고 있다고 추산한다.

금융기관 활용에 따른 효과도 세수에 못지 않다. 본사가 지방에 있다는 의미는 결제권이 지방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당연히 지역금융기관을 활용하므로 원천적으로 돈이 외지로 유출되지 않고 지방에 머무르게 된다. 지역에서 돈을 벌어 서울로 가져가는 형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를 본사를 서울에 따로 두고 지방에 공장만 있는 다른 기업과 비교해보자. LG전자 창원.김해공장의 경우 모두 6000여명이 근무하고 있고, 지방협력업체수가 600개사, 소형공구 등 구매관련업체도 400개사나 된다. 고용창출이나 지역자원활용 측면에서는 두산중공업과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LG전자가 내는 지방세는 창원.김해를 합쳐도 13억여원에 불과하다. 창원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지역경제 발전을 촉진시키고 기업이 지역사회개발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본사가 지방으로 이전해야 한다”며 “그러나 많은 기업들은 자금.인력.정보를 손쉽게 얻기 위해 수도권을 고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재를 지방에 머물게 하자 = 지방화를 위한 또 하나의 해법은 ‘사람’이다. 지방기업들은 돈과 정보만큼이나 인력확보에도 애를 먹고 있다.

창원에서 공직에 근무하고 있는 김모(53)씨. 세 아들을 둔 김씨는 군대에 가 있는 세 아들의 제대를 앞두고 고민에 싸여있다.

김씨의 세 아들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그것도 사립대학이다. 매학기 세 아들의 등록금이 600만원을 넘어 김씨는 1년에 1300여만원을 부담한다. 이뿐만 아니다. 들어가는 생활비 또한 만만치 않다. 학교가 떨어져 있다보니 2명은 5000만원 전세를 얻어 생활하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하고 있다. 하숙비는 한달에 30만원, 거기다 세 명의 한달 용돈까지 각기 25만원을 부쳐주고 있다.

4급 공무원인 김씨의 월급으로는 벅차다. 적금을 깨기도 부담스러워 마이너스통장을 쓰고 있다.

이토록 과중한 교육비 부담을 지면서까지 세 아들을 서울로 보내는 김씨는 무어라고 말할까. “공직에 있어보니 지방보다는 서울에서 배우는 게 훨씬 낫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는 학벌을 무시할 수 없다. 지방대 출신으로서는 기회조차 얻기 힘든 게 현실 아닌가.”

도내에는 모두 161개교의 고등학교가 있다. 해마다 이곳에서 배출되는 학생 수만 해도 12만5000여명 정도. 이들중 수능시험 성적이 전국 상위에 속하는 우수학생들의 대부분은 서울행을 택한다.

도내 학생들의 외지 유출 비율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 자료는 도교육청에조차 없다. 이런 조사결과마저 학교간 또는 지역간 위화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도내에 있는 4년제 대학은 모두 8곳이나 되지만 해마다 신입생 모집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우수학생을 끌어모으기가 갈수록 힘들어 애를 태우고 있다.

이런 현상은 결국 지역출신 우수고교생 지방대 진학률 감소→취업률.대학연구능력 저하→지방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확산→우수고교생의 지방대 회피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지방 사립대를 졸업한 김모(28)씨는 “같은 4년제를 나오더라도 서울과 지방은 천지 차이다. 아직은 실력보다는 학벌이 고용심사기준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방에 있는 기업들조차도 지방대 출신을 기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일자리가 많은 서울지역에서 그나마 직장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사람에 대한 투자가 만사의 기본이라는 경구를 떠오르게 한다. 인재가 없는 상황에서 지방화는 요원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